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2
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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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의 행위(즉 酒色)를 옹호적인 측면에서 보는 것은 그가 전통선을 부활시킨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 그의 제자들이 뒷날 한국 선종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그의 제자 가운데 만공이나 한암과 같은 고승이 없었다면 경허는 진작 폄하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율을 어느 정도는 지켜야 할 고승으로서 드러내 놓고 음주식육과 여색, 끽연(喫煙) 등 막행막식으로 계율 의식을 무너뜨리고 후대 수행자들로 하여금 주색을 답습하게 한 것은 일대 과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후배 고승인 백용성, 박한영, 방한암 등은 그러지 않았다. 붓다는 물론, 보리달마, 육조혜능, 조주, 임제의현, 보조지눌, 청허휴정 등도 그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초월했다면 당연히 욕망도 초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禪)은 다시 일으켰지만 불교는 깊은 병에 들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계율 의식의 부재로 인격적 형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깨달음의 세계가 위대하다고 해도 행위, 계행이 바르지 못하다면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될 수 없다.
5.
경허 입적 100년을 맞아 ‘경허의 삶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보다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의 직제자 만공은 “선(善)은 부처, 악은 호랑이보다 더했다(善惡過虎佛)”고 했고, 법제자 한암은 “법을 따르는 것은 좋으나 행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이능화, 김태흡, 진진응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허에 대한 공(功)과 과(過)가 극명하다.
공(功)은 따라가되 과(過)는 쫓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대의 수행자들은 경허의 삶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혜인일 것이다. ■
윤창화
학술서적 전문출판사 민족사 대표. 1972년 해인사 강원 졸업(13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졸업. 논문으로는 〈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한암선사의 서간문 고찰〉 〈무자화두 십종병에 대한 고찰〉 〈성철의 오매일여관 비판〉 등이 있고, 저서로 《근현대 한국불교명저 58선》 등이 있다
허약한 불교계 지성의 한 단면입니다... 2012-10-03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