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오른쪽)가 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현각 스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종교적 신념은 이성적 사고를 통과해야 더 단단해진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티베트 망명정부의 ‘쿤둔(살아 있는 부처)’ 달라이 라마(77).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아직 그의 입국을 허용치 않고 있지만 일본은 1960년대 후반에 빗장을 풀었다. 최근에도 거의 매년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2012 달라이 라마의 일본 법회가 4~5일 요코하마(橫浜)에서 열렸다. 대중 강연 및 질의 응답, 한국 불자(佛者)와의 면담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의 요코하마 일정에 빠짐 없이 참석했다.
그는 무엇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어려운 불교 교학(敎學·이론)을 깊이 있게 설명하다가도 생뚱맞은 질문에는 “솔직히 모른다”고 했다. 모든 문제에 대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청중의 질문이 통역되는 동안 옆에 앉은 비서의 귓불을 만지는 천진스런 모습도 보였다.
달라이 라마는 상식과 합리를 강조했다. 종교가 좁은 교리 안에 갇힐 게 아니라 ‘세속의 윤리’를 받아들여 세상과 호흡해야 한다고 했다. 5일 한국 불자들과의 면담에서는 ‘하버드 출신’ 현각(48) 스님이 질문자로 나섰다.
“본성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그에 따라 수행법도 다양할 수 있다.”
-몇 사람이 평화롭게 지내기도 힘들다. 공동체 차원의 평화와 화합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
“1973년 유럽에 처음 갔을 때 BBC 기자가 묻더라. ‘유럽에 왜 왔느냐’고. 세계 시민 자격으로 방문했다고 대답했다. 전세계 70억 인구가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인류의 구성원이다. 지구상의 각종 문제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 종교의 신조차 마찬가지다. 그런 차원에서 모두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는 상충하지 않나.
“예전에 미국의 한 여성 지식인이 ‘과학은 종교를 죽인다’며 조심하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노’라고 답했다. 왜냐. 부처님은 열반 직전 ‘내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고 했다. 뭐든지 의심하고 따져서 납득한 후에 받아들이라는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종교와 과학은 통할 수 있다. 요즘 과학자들은 마음의 체계를 연구한다. 사람의 정신 안에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교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도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다고 본다.”
-종교간 대립이 심각한데.
“아는 가톨릭 신부 중에 불교 명상에 심취한 이가 있다. 그가 한 번은 ‘공(空)’의 개념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당신이 신경 쓸 일 아니라고 했다. 설명했더라도 모든 존재는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철학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다. 그 신부처럼 불교도의 마음도 열려 있어야 한다. 세속적 기준이나 윤리에 맞춰 사랑·연민·용서 등 종교 공통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종교가 보편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한국 신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종교적 신념 역시 (다른 신념처럼) 이해와 관찰, 이성적 사고를 통과해야 더 견고해진다. 각자 지성을 활용해 부처는 어떤 분이고, 깨달음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4일 일반 법회에서는 배우자 선택에 대한 고민부터 인류 진보의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유럽인·일본인·한국인 등 청중도 다양했다.
-불교에서는 적(enemy)을 어떻게 바라보나.
“불교도로서 내가 부처님이나 부모님에게 관용과 연민을 발휘할 기회는 없다. 적은 내게 관용과 연민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사람이다. 이를 통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 불자와의 면담에서 정치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5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정치 관련 발언을 꺼리지 않았다.
-독도 문제는 어떻게 풀면 좋을까.
“한국은 일본이 필요하고 일본은 한국이 필요하지 않나. 전체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진단은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
“결국 교육의 문제다. 젊은 세대를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
그는 대뜸 중국에 대한 유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중화주의라고 했다.
“문화든 언어든 자기네가 최고라는 지나친 민족주의는 좋지 않다. 나도 예전에는 불교가 최고의 종교라고 말했으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특정 질환에 잘 듣는 약이 있듯 어떤 정신적 분위기에 가장 잘 맞는 종교가 있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한 종교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
달라이 라마와 한국 불자와의 면담은 BTN 불교 TV(회장 성우 스님)가 마련했다. 불교TV는 12일 밤 10시 이번 행사를 중계 방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