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시인이 박후보에게 던진 열두글자-불통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다(不不通 非普通)-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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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다 (不不通 非普通)
김지하 시인(이하 ‘김시인’)이 박근혜 후보(이하 ‘박후보’)를 열두 글자로 정리했다.
“불통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다” (不不通 非普通)
김시인은 이날 낮에 토지문학관으로 찾아 온 박후보를 만나고 지인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자리에 동석한 누군가 뉴스를 전했다.
“박후보가 제천으로 넘어가는 길에 가톨릭 배론 성지 고(故)지학순 주교의 묘를 참배했다는 데요?
“뭐야? 눈덮힌 언덕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려면 엄청 미끄러울 텐데?”
“지팡이를 짚고 올라 간 모양입니다.
내려 올 때에는, 묘를 안내한 신부님을 부축해서 내려왔다는데요?”“아까 보니까 몸집도 작고 손도 애기 손만 하던데? 신부를 부축해?”
“네.”
“허, 참, 불통 불통하는 데 그게 아니군.
불통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야. ““….”
“거기 꼭 가야 한다고 했더니 정말 가?
거기가 어디야?
반(反)유신 운동의 대부가 바로 지학순 주교잖아!
‘김지하 백 번 만나는 것보다는 거기 한 번 가는 게 좋다’고 했더니 금방 뜻을 알아 듣네!
신통하다!”
이 열두 글자는 단순히 박후보에 대한 인물평이 아니다.
김시인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제물로 바친 [5.16 이후 50년 세월] 전체를 매듭짓는, [인생 챕터가 넘어가는 소리]이다.
박후보와 김시인의 만남은 정치 쇼가 아니었다.
[미쳐 버렸어야 마땅한 세월을 견디고 정치 거인으로 우뚝 선, (육체적으로는 가냘프기만 한) 박후보]와 [이미 70년대에 박정희의 숙적으로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던 김지하]—이 두 거인의 정신적 교류였다.
이 글은 그 교류 순간에 관한 스케치이다.
1. 시인의 영혼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 왔나?
해방 이후 지금까지—그것이 어떤 세월인가?
남들이 3백년 걸린 일을 불과 두 세대만에 뚝딱 해치운 시간압축(時間壓縮)이다.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면 깡통이 우그러들고, 시간의 밀도가 증가하면 마음이 거칠어 진다.
지나치게 빠른 변화는 문화의 원형(原形, archetype)을 파괴하고, 사회의 통합을 해체한다.
이승만과 박정희—이 두 명의 걸출한 인물의 리더십 아래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치달아 온 지난 67년의 세월은 우리 문화와 사회를 뿌리부터 뒤집어 놓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기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되었던 대가였다.
이 현기증 나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 한, 혹은 적응하기 거부한, 혹은 적응 자체에 대해 반란(反亂)한, 수백만 사람들의 원(怨)과 한(恨)이 김시인의 일생을 꿰뚫고 있는 화두이다.
김시인은 위대한 문화인류학적 통찰력을 가진 큰 무당이다.
망자(亡者)와 희롱하고 한(恨)과 논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원주 김시인의 집 창문에서는 궁예가 진지를 꾸렸던 영원산성(강원도기념물 제27호)이 바로 건너다 보인다. 김시인은 하루 종일 이 산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1천 1백년 전, 궁예를 따르던 중조선(中朝鮮, 한반도 허리벨트) 사람들의 원(怨)과 한(恨)을 들었던 것이다.
그의 영혼 속에서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백 오십년 전, 이 땅에 근대문명이 덮치고 가톨릭이 번져가고 동학이 꿈틀대기 시작한 시대 이후의 모든 충격, 분열, 고통을 쓰다듬는 진오귀굿이 진행되어 왔다.
무려 50년 동안.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그래서 그는 일찍이 1960년대에, 죽어 나자빠져 있던 판소리, 탈춤, 마당극, 전통리듬을 부활시켰다.
그래서 그는 세계 문학계가 인정한 위대한 저항시인이 되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저항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해, 보다 정확하게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있어야 마땅한 [얼의 얼개]를 복원하기 위해” 저항했다.
1970년에 그가 쓴 ‘황톳길’이란 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뱀발:
이 시의 ‘애비’는 작품 속의 ‘애비’이다.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샆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 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든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 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1979년 10월 중순, 서대문형무소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가 김시인을 찾아왔다.
뱀발:
박선호는 김재규의 오른팔이었다.
며칠 후 그는 박대통령 시해사건의 핵심 멤버로 참여해서 M16 방아쇠를 당겨 확인사살 하는 일을 주도했다.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목숨을 건 거사를 앞두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리라.
단 두 개의 메시지를, 오랜 시간 동안 이리 저리 말을 돌리면서 전했다.
첫째, 차지철(김재규에 의해 총을 맞고 숨진 당시 최고 실세)이 만든 [1천명 처형명단]의 1호가 김시인이라는 것.
김시인이 배짱 좋게 물었다.
“김대중씨가 1호가 되야 하지 않습니까?”
박선호는 껄껄 웃으며 답했다.
“김대중의 입은 돈으로 틀어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타고난 반골(反骨)이오.
돈 가지고는 안 됩니다.”
둘째, 김재규가 김시인에 대해 각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마도 김재규는 거사 후에 김지하를 석방시켜서 정치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선호는 이를 위해 미리 김시인의 뇌리에 ‘김재규’라는 이름을 박아 넣었다.
1979년 김시인과 박정희 권위주의 정부는 이 같은 철천지 앙숙이었다.
차지철의 욕심대로였다면 김시인은 그때 죽었어야 한다.
2. 광명성으로 만들어진 인연
김시인이 먼발치에서 박후보를 지지하는 것조차 일종의 ‘시대적 기적’이다.
‘여성의 시대’라는 화두를 던짐으로써 ‘여성 대통령 박근혜’ 컨셉을 만들어내게 한 것은 더 큰 기적이다.
그러나 박후보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고문이다.
정신적 고문이다.
김시인은 크나큰 무당이다.
박후보를 직접 본다는 생각만으로도, 그가 50년 동안 진오귀굿을 베풀어 가까스로 달래 놓은, 그리하여 이미 김시인의 영혼에 찌꺼기가 되어 달라붙어 있는 수백만 원(怨)과 한(恨)이 길길이 날뛴다.
김시인이 박후보를 만난 것은 오로지 광명성의 인연(?) 때문이다.
북한이 쏘아 올린 대륙간탄도미사일용 로켓이 12월 12일, 그로 하여금 박후보를 만나도록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영혼에 덕지덕지 끼어 있는 원령(怨靈) 찌꺼기들에게 한 소리 크게 꾸짖었다.
“조용히 해!
지금 너희들이 나설 때가 아니야!
너희는, 조선의 얼을 더듬기 위한 밑밥에 지나지 않잖아!
이제 조용히 해!
중요한 일이 있거든!”
그러나 50년 세월 동안 함께 지내온 원령은 그리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12월 12일 저녁부터 시인의 영혼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밧줄처럼 꼬인 천 가닥, 만 가닥 회한이 거대한 뱀이 되어 시인을 물어 뜯었기 때문이다.
김시인은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와졌다.
매 순간 다음날(13일)로 잡힌 만남을 취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인은 원령(怨靈)을 다루는 법을 잘 안다.
운명의 빛, 운명의 길—“흰그늘”을 사용해서,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원령 이무기를 붙들어 매는 법을 잘 안다.
그에게 흰그늘은 고(故) 지학순 주교로 나타나곤 한다.
반(反)유신운동의 정신적 지주였고 정의구현사제단의 모태였던 사람.
뱀발:
지학순 주교는 북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해서 맹렬한 반대입장을 가졌다.
지학순 주교가 만약 지금 살아있다면, ‘사제복 입은 깡통좌파’에 지나지 않는 정의구현사제단을 개발살냈을 것이다.
김시인은 13일 아침, 박후보 측에 “지학순 묘지를 참배해 달라. 그 분 묘지 한 번 가는 것이 나를 백 번 만나는 것보다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넣었다.
후보 캠프는 발칵 뒤집혔다.
이날 당장 유세 일정을 조정해서 묘지 참배를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김시인은 불같이 화를 냈다. (캠프 실무자들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박후보가 김시인의 말에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유세 일정을 전체적으로 손보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김시인과 박후보의 만남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아침 11시의 일이다.
2시 30분으로 기획된 이 역사적 만남이, 예정 시간을 불과 3시간 30분 앞두고 확정된 것이다.
김시인의 영혼을 물어뜯던 원령 이무기는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김시인을 모시고 바람을 쏘이기 위해 시인의 집을 나섰다.
뱀발:
나는 김시인이 받아들인 막내 제자쯤 된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사실 내게는 김시인의 말이나 글이 아니라 그의 존재, 그의 영혼 자체가 화두이다. 김시인은 내게 ‘영혼의 치료제’이다.
그를 보기 시작한 다음부터, 내 심리(psyche) 밑바닥에 있는 가장 개인적인, 가장 어둡고 깊은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치료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커다란 충격, 상처, 하중을 견디어 내고, 까마득한 우듬지를 벌리고 선 인간 거목(巨木)이기 때문이다.이 거목의 모습은, 내가 감추어 두고 있는 상처가 얼마나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작은 상채기에 지나지 않는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에 의한, 나 자신에 대한 치유가 시작된다.
3, 발악해도 소용없다
오후 2시가 못 되어 김시인을 토지문화관으로 모셨다.
박후보의 조윤선 대변인과 다른 손님들이 먼저 도착했다.
박후보는 유세 열기 때문에 30분 정도 늦어진다고 했다.
다들 화기애애 떠들석하게 이야기했다.
김시인은 특유의 어눌한 듯한 유머와 철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 줬다.
그러나 혼자 화장실에 다녀 올 때 그의 얼굴은 한없이 굳어 있었다.
어찌보면 김시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분노에 몸을 떨고 있는 원령 이무기의 그림자가 그 얼굴에 어른거렸다.
수억가닥의 회한과 착잡이 거대한 동앗줄로 꼬여 그를 칭칭 묶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는 원령 이무기의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이 인간 거목은 의연했다.
사람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면 이무기의 모습은 눌려 감추어지고, ‘시인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박후보가 오기 전까지 그는 조윤선 대변인 등 캠프 멤버들, 또한 이 역사적 만남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진 작가와 여유있게 이야기하고 웃었다.
김시인의 반려이자 벗인 김영주관장이 방 바깥 복도 한 구석에서 농담을 했다.
“우리 김시인이 (조윤선 같은) 미인을 좋아하지.
조금 있으면 큰 웃음 소리가 날 거야.”
이 말이 방 안으로 전해져서 더 큰 웃음이 났다.
숫기가 없는 조윤선 대변인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박근혜와 만난다]라는 지독한 정신적 고문과 싸우면서 김시인은 시시각각 더 강해지고 있었다.
4. 김시인과 박후보의 교감
3시가 조금 넘어 박후보가 도착했다.
10평 남짓한 토지문화관장실. 김시인이 상석에 앉고 박후보가 김시인의 왼편, 김영주관장이 김시인의 오른편에 앉았다.
영상 카메라맨, 사진 기자, 취재 기자, 지인들, 캠프 관계자들이 2~3미터 밖에 오골오골 들이찼다.
플래쉬가 터지고. 난잡하고 어수선한 자리였다.
그러나 만남이 시작되자 마자 깊은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 온 세 사람 사이에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가상의, 독립 공간이 만들어졌다.
세 사람은 대화에 빨려 들어갔다.
안보, 문화, 교육, 여성과 같은 근본적인 국가 아젠다에 대해 툭툭 이야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이는 표면일 뿐이었다.
김시인, 박후보, 김영주관장 사이에는 깊은 정신적 고양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후보는, [아버지의 권력에 의해 인생이 망가진 크나 큰 인물 김지하]의 소탈, 솔직, 호의로 포장된 축복 속에서 한없는 활기와 에너지를 얻어 가고 있었다.
박후보의 심리 밑바닥에 똬리 치고 있던 두 개의 부정적 응어리가 녹고 있었다.
하나는 죄책감. 또 하나는 만성적 배신을 겪으면서 생겨났던 의심.
김시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이런 의미였다.
“박후보!
과거의 일은 애초에 귀하가 죄책감을 느낄 문제가 아니야.
귀하는 귀하의 꿈을 이루고 귀하의 인생을 살어.나, 천하의 김지하가 귀하의 정치적 성공과 국가의 안정/번영을 바라잖아?
당신 아버지의 권력이 갈아먹으려 들었던 나, 천하의 김지하가 당신을, 새 시대를 열어갈 여성 지도자로 추대하잖아.이제 그 쓸데없는 죄책감 따위는 집어 치워.
죄책감에선 엉뚱하고 미련한 행동만 나올 뿐이야.
죄책감은 지혜의 적이거든.나는 귀하를 축복해!
대한민국을 축복해!
생명을 축복해!”.
김시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또한 이런 의미였다.
“귀하는 그 동안 배신의 세월을 감당하며 살아왔겠지.
사람은 원래 그래.
탐욕스럽고 간사하지.하지만 삶은 바로 그 욕망과 잔대가리를 통해서 뚜벅뚜벅 걸어가기도, 꾸역꾸역 흘러가기도 해.
사람을 의심하도록!
지금보다 더 의심하도록!
누구에게도 절대적 신뢰를 주지 말도록!그러나 또한 누구에게도 절대적 불신을 앙금으로 간직하지 말도록!
무조건 신뢰하지도 무작정 불신하지도 않는 것—이것이 바로 지도자의 길이야.
자신감이 있어야 돼.
삶과 생명의 도도한 강물에 대한 자신감!그래야 신뢰의 함정과 불신의 사막을 뛰어넘을 수 있어!
봐!
벌써 가슴에 자신감이 차 오르고 있잖아!
그래!
자신감이야!귀하는 그 험한 고통과 고독을 살아냈잖아!
그런 사람이 삶에 대해, 생명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면 누가 있겠어!
귀하가 자신의 내공을 돌이켜보지 않았을 뿐이야.내가 견뎌낸 것을 봐!
그리고 이렇게 넉넉하잖아?
귀하는 나만큼 견딘 사람이야!더 넉넉해질 거야.
암.
그렇지.
더 크고 더 넉넉해 질 거야.”
이 같은 김시인의 뜻은 매초 매순간 고스란히 박후보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박후보의 영혼의 힘이 이제껏 그를 가두어 왔던 틀을 넘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5.. 운명의 완성
김시인 본인은?
박후보와 대한민국을 축복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축복을 완성했다.
이 자리에서 김시인은 박후보에게,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난 다음날에 본 환상을 이야기했다.
“다음날이었죠.
백일 참선을 마친 날이었습니다.
참선의 효과였을까요?
저는 환상을 봤습니다.허공에 공이 세 개가 차례로 떠 오르더군요.
공에는 이름이 있었지요.
글자가 써 있었어요.첫번째 놈에는 ‘인생무상’…
두 번째 놈에는 ‘안녕히 가십시오’…
세 번째 놈에는 ‘저도 곧 뒤따르리다’…"
박후보를 축복함으로써 김시인은 두 번째와 세 번째 공을 완성했다.
박정희대통령이 죽은 지 꼭 33년만의 일이다.
김시인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안녕히 보낸다’는 게 무슨 뜻일까?
박정희 대통령 뿐 아니라, 이제까지 50년 동안 김시인과 친근하게 놀아 온 원령들을, 그 찌꺼기까지 몽땅 보낸다는 것을 뜻한다.
원령들을 그 찌꺼기까지 보내지 못 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안녕히 보낼’ 수 없다.
원령들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일방적인, 위로부터의 근대화]에 의해 치인 자들이기 때문이다.
원령들이 그악스럽게 날뛰는 한 박정희 대통령을 [안녕히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다.]
원한, 복수욕은 과거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복수욕]이 바로 원한이기 때문이다.
김시인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따른다’는 게 무슨 뜻일까?
박정희 대통령을 따라서 죽는다는 뜻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닦고 지나간 [근대문명의 풍요]라는 고속도로 위에 민족의 얼, 민족의 문화를 글로벌 차원에서 벋어나가게 만드는 것—이것이 바로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라는 뜻이다.
김지하와 박근혜—이 두 거인은 불과 50분 동안 만났지만 50년 세월의 빛과 어둠이 재생되고 부활되고 정리되었다.
캠프의 관계자들도 이 만남의 의미를 아는 지, 시간이 지나가도 중간에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끼리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사적 만남이야. 정말 역사적이야.”
“후보님이 이토록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무엇인가 커다란 에너지를 충전받고 계시는 것 같아.
그냥 두자고.
그냥 둬.”
이 날 나는 두 거인의 운명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십 년 동안 꽁꽁 동여매 놓았던 박후보 영혼의 힘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았다.
수십년 동안 김시인의 화두였던 칙칙한 원령들의 찌꺼기가 바람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 만남을 강력하게 주장한 김시인의 영원한 반려 김영주관장은 빙긋빙긋 웃고 있을 뿐이었다.
6. 에필로그: 조져!
가슴이 먹먹한 상태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김시인이 차에 올라타면서 내게 한마디 툭 던진다.
“조져!”
“뭘요? 뭘 조져요?”
“아까 말했잖아?”
“네?”
“박후보는, 불통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라고!”“???”
차는 떠났다.
그래서, 자칭 제자라고 착각하고 사는, 그러나 실은 김시인의 영혼치료를 받고 있는 회복기 환자인 나는 비천한 솜씨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조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글 밖에 없기 때문에.
이 글이 김지하-박근혜 만남에 대한 속물스런 착각과 거짓을 ‘조지’는 작은 몽둥이라도 되기를 빌 뿐이다.
박성현 저 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
“박후보!
과거의 일은 애초에 귀하가 죄책감을 느낄 문제가 아니야.
귀하는 귀하의 꿈을 이루고 귀하의 인생을 살어.
나, 천하의 김지하가 귀하의 정치적 성공과 국가의 안정/번영을 바라잖아?
당신 아버지의 권력이 갈아먹으려 들었던 나, 천하의 김지하가 당신을,
새 시대를 열어갈 여성 지도자로 추대하잖아.
이제 그 쓸데없는 죄책감 따위는 집어 치워.
죄책감에선 엉뚱하고 미련한 행동만 나올 뿐이야.
죄책감은 지혜의 적이거든.
나는 귀하를 축복해!
대한민국을 축복해!
생명을 축복해!”. 2012-12-15 17:56
“다음날이었죠.
백일 참선을 마친 날이었습니다.
참선의 효과였을까요?
저는 환상을 봤습니다.
허공에 공이 세 개가 차례로 떠 오르더군요.
공에는 이름이 있었지요.
글자가 써 있었어요.
첫번째 놈에는 ‘인생무상’…
두 번째 놈에는 ‘안녕히 가십시오’…
세 번째 놈에는 ‘저도 곧 뒤따르리다’ 2012-12-15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