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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화보살 카페]이스람교를 중심으로 본 인간과 종교.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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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종교.

 

종교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나의 짧은 지식으로 라도 우리 도반님들의 공부에 도움을 드리고자 해서 이렇게라도 같이 공부해 보는 것이다.

짧은 지면을 통해서라도 서로에 대해서 알고 유사점과 동일성을 찾아서 이해하고 화합하는 것이 종교에 대한 공부의 목적이다.

  오늘은 이슬람교에 대한 시간이다.

우리는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아랍지역의 종교라는 것과 배후에는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특이한 사람들이 있고 테러를 일삼는 호전적인 종교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슬람교의 발상지 아랍은 인류사에서 빛나는 문명을 발전시킨 지역이다.

인류 문명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만 보더라도 아랍지역에는 훌륭한 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이 유일신사상으로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유일신교가 다 그렇지만, 이슬람교는 유독 신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종교다. ‘이슬람이란 용어가 복종한다.’는 뜻을 가진 것만 보아도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의 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슬람교의 최고 경전은 꾸란(코란)이다.

이슬람교도들은 꾸란을 유일신 신앙을 완성시킨 최종적 계시로 생각하기 때문에 꾸란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헌신은 대단하다.

이슬람교도들은 꾸란과 함께 하디스라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중요한 생활지침으로 삼고 있다.

무함마드 본인은 구세주가 아니고 단지 예언자라고 했지만, 이슬람교를 알기 위해서는 무함마드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서는 이슬람교 이전의 백성들에게 들려준 알라()’의 계시로 생각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이를 제대로 전하지 않고 왜곡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꾸란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왜곡해 버린 원래의 계시를 알라가 다시 무함마드라는 예언자를 통해서 새롭게 전달한 최후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명백하게 다시 전한 무함마드가 최후의 예언자가 된 것이다.

그의 출생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약570년경에 아라비아 반도의 부유한 상업도시 메카에서 태어나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25살에 자기가 점원으로 일하던 상점의 돈 많은 15살 연상의 과부 카디자와 결혼하여 자식을 여러 명 두었으나 모두 죽고 파티마라는 딸만 무함마드보다 오래 살았다고 한다. 본부인 카디자 외에도 여러 명의 부인과 첩이 있었지만 아들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고향인 메카 주변의 산과 동굴에서 명상과 기도를 위주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수도생활을 하게 된 동기로는 전생의 업으로 인한 타고난 종교적 성정과 함께 애지중지 하던 자식들의 죽음으로 비통함과 함께 삶의 허무를 느낀 것도 수도생활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열심히 수도에 전념하고 있던 중에 그의 나이가 40세 되었을 때,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그가 알라의 예언자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는 그 지역 일대의 부족들이 믿고 있던 각기 다른 여러 종류의 신들을 부정하고 고향사람들에게 알라만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주장하지만, 초기에는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부족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물론이고 각기 다른 수많은 신들을 숭배하던 메카지역의 기존지배세력의 압박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를 해치려는 세력들로 인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메카를 떠나야만 했다.

 

그래서 622년에는 그 유명한 히즈라(이주)를 단행한다.

메카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메디나 지역으로 이주를 한 후 그곳에서 크게 성공하게 된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메디나로 성천(聖遷)하던 해인 서기 622년을 이슬람교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서기 622년이 이슬람력 1년이다.

그러므로 서기 2012년은 이슬람력 1391년이 되는 것이다.

열심히 수행하며 알라의 계시를 받았던 고향인 메카를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떠나 왔기 때문에 메디나에 있는 동안 메카를 향해 엎드려 절을 하는 예배의식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상징처럼 알려진 메카를 향해 하루에 5번의 기도를 하는 의식의 발단이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많은 추종자들이 생기면서 세력을 확보한 무함마드는 메카를 정복하고 아랍 전체지역의 새로운 지도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는 메카의 카바신전에 모셔져 있던 여러 부족들이 섬기던 다양한 신상(神像)들을 우상숭배라고 모두 파괴하고 유일신 알라만 섬기도록 했다.   그로인해 메카는 이슬람교의 중심성지가 된 것이다.

무함마드가 아랍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정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와 국가를 구별하지 않는 신정일치(神政一致)제도가 된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로마제국도 기독교를 받아들여서 신정일치시대가 있었던 것과 비슷하지만 목적과 실태는 전혀 다르다.

이슬람교도들은 종교와 국가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서구제도를 세속주의라고 부정하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알라 이외의 다른 신은 없다.”는 주장으로 기존의 유일신교인 유대교나 기독교와 상충되면서 서로가 자기가 믿는 신만 주장하며 잠시도 바람 잘 날이 없이 긴 역사를 투쟁으로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교가 주장하는 그들의 뜻을 보면, “알라는 예언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데 무함마드 이전의 어느 예언자도 완벽한 예언을 전달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나중에 신으로 추대하지만, 무함마드는 철저한 인간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무슬림들에게 전승되고 있는 무함마드의 행적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마드와 함께 예루살렘을 거쳐 일곱 하늘을 통과하면서 세례자 요한, 예수, 모세, 아브라함을 만나고 최종적으로 가브리엘 천사마저 뿌리치고 단독으로 알라를 만나서 알라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교도가 지켜야하는 기본 의무에는 하루에 5번의 메카를 향해 절을 하며 기도하는 예배의식과 자카드라는 자선을 행하는 의무가 있다. ‘세상의 부()는 알라의 것이고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하거나 힘들게 살고 있는 이웃을 도와야 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수입의 2.5%를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제도가 있다. 헌금을 낼 수 없는 사람은 선한 마음과 행동으로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라마단이란 금식기간이 있다. 꾸란에 명시된 신성한 달로 이슬람력의 9월에 한 달 동안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금식하는 것이다.   이슬람 달력은 유대교와 같이 음력이며 1년이 354일이다.

음력인 달()을 의미하는 초생달 모양은 이슬람교의 상징적 표식이다. 사막의 유목민들에게는 밤에 뜨는 달이 고맙고 신비하기도 했을 것 같다.   깜깜한 그믐이 지나고 나면 반가운 초생달이 보인다.

그래서 그들에게 초생달이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 된 것 같기도 한다.

또 기본 의무 중에는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그들의 최고 성지인 메카로 순례를 가야한다. 순례는 이슬람력 12월에 행한다. 순례의 주 행사는 검은 돌이 있는 카바신전을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7번 돌고 돌에 입도 맞추고 예배를 하는 것이다. 이때마다 메카에는 세계 각지의 이슬람교도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 와서 안전사고가 나기도 한다.

 우리가 설악산의 험난한 산길을 올라 봉정암의 적멸보궁에 참배하는 것과 이슬람교도들이 메카의 카바신전을 참배하는 것은 성지순례를 향한 인간의 본질적 심리는 같은 것이다.

 

  메카는 원래 나무하나 없고 황량한 사막 이다. 낙타에 짐을 싣고 대상(隊商)들이 지나가는 길목이었는데 잠잠이란 깊은 우물이 있어서 휴게소처럼 대상들이 몰리면서 상업지역으로 발전했고 그 황량한 벌판의 한가운데에 검고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솟아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히 신비하고 신성해 보였다. 그래서 거기에 소원을 빌고 신상(神像)을 만들어 모시고 부족마다 앞 다투어 신을 모시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풍수지리적인 시각으로 보면 황량한 사막에 깊고 큰 우물과 검은 색깔의 큰 바위가 솟아올라와 있는 곳은 충분히 성지(聖地)가 될 요소가 되는 것이다.

무함마드가 추종자들과 함께 알라의 이름으로 메카를 정복한 때가 서기 630년이다. 그런데 2년 뒤 무함마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무함마드는 서기 570년에 탄생하여 632년에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 63년이란 일생을 통해 40세에 알라의 계시를 받고 23년 동안 이슬람의 예언자로 활동한 것이다.

이슬람교는 무함마드 이후에는 시아파수니파라는 두 개의 큰 종파로 갈라진다.

이것은 무함마드의 사후에 지도자 승계를 놓고 분열하게 된 것이다.

시아파의 주장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는 예언자 집안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수니파는 후계자가 꼭 집안사람일 필요가 없고 교단의 가장 유능한 인물이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놓고 서로의 주장이 달라서 두 개의 종파로 갈라지고 이 두 종파 사이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강길형 전체 이슬람교도의 8-90%가 수니파이지만 세속주의를 거부하고 철저한 이슬람주의를 고수하는 국가는 오히려 시아파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두 종파에서 갈라져 나온 새로운 분파가 또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를 감행할 수 있는 명분은 ‘지하드(聖戰)’라고 하여 이슬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반대파와의 전투에서 전사(戰死)하면 곧 바로 알라가 있는 천당으로 가게 된다고 하며 그러한 행위를 영웅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2차대전 당시에 제국주의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들이 비행기와 함께 적진에서 산화하며 천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웅시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바로 유대교의 엄한 율법이란 모세5경을 굳게 믿고 각자 아전인수 격으로 잘 못 받아들인 것이다.

    이슬람교도 기독교와 같이 유대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대문이다. 아랍이라는 중동지역에서는 부족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이 부족의 수만큼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족마다 각기 다른 신상(神像)을 만들어 메카의 카바신전에 모셔 놓고 숭배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모두 없애고 하나의 신 ‘알라’로 묶은 것이 이슬람교다.

    이슬람교의 주장은, 유대교의 야훼는 오직 유대민족 만을 위한(選民思想) 편협 된 유대인의 신이었고, 기독교는 예언자 예수를 신격화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고, 오직 ‘알라’만이 공평하고 진정한 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대인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 있고, 기독교인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하는 것과 달리 무슬림은 금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꾸란은 헌법보다 높고 고귀한 계율이며 절대복종의 대상이고 삶을 지배하는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꾸란에 언급되지 않았거나 애매한 문제들은 ‘하디스’라는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 언행록에는, 낮잠 자는 시간에는 다른 집을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에티켓 같은 것을 비롯하여 예배와 순례에 관한 규정과 음주와 도박과 이자취득의 금지, 음식물의 금기사항과 혼인의 규정에 이르기 까지 일상생활과 행동에 관한 규범이 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는 종교인 동시에 그들에게는 생활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이슬람교를 자세히 알기위해서 꾸란을 읽어보니 전체가 11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경고인 종말론과 유일신 알라의 권능과 인간이 신을 향한 마음가짐과 신을 믿는 사람의 실천적인 종교의무 등으로 편집되어 있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 상당히 관대한 면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알라를 믿는 자, 유대인, 그리고 기독교도를 막론하고 신을 믿는 사람과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신의 축복을 받으리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가하면 94.확장(擴張)의 장(章)에는 불교의 보왕삼매론을 연상케 하는 “괴로움은 낙과 더불어 있고, 낙은 괴로움과 더불어 있다.”는 구절도 있다.

    그런대도 이슬람교가 테러를 저지르고 폭력적인 종교로 인식된 것은 기독교와 같이 유대교의 모세5경인 율법에 묶여 있고

    또한 기존의 유일신교인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오랜 불화에 있는 것이다. 기독교와는 오랜 역사를 두고 반복된 전쟁으로 원한이 쌓여 증오심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에는 기독교 국가들의 지원으로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부터는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아라비아 민족에게 기독교도들은 한 번도 평화롭게 나타나 본 적이 없는 침략과 파괴의 세력이었다.

    1095년에 시작되어 2백년간 계속된 십자군 전쟁은 아라비아인들에게는 몸서리치도록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고 약탈한 재앙이었다. 그런가하면 2차대전 이후에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의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원하여 새로운 국경이 생기면서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도들은 고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이스라엘과 이슬람국가들 간의 중동전쟁에서도 기독교도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적(敵)이었다.

    1991년 걸프 전쟁과 2001년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지난 역사를 통해 유대교인 이스라엘과 서방 선진국인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교도들에게는 복수와 보복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십자군전쟁이후 9백년이상을 대립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9.11사건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는 궁극적으로 예수라는 인간을 신격화 하게 되지만, 알라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예수는 인간이며 신이 보낸 사도에 불과하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교는 기독교의 신부나 목사 같은 종교지도자는 없고 단지 이맘이라는 안내자가 있고 대주교나 교황 같은 높은 직위도 없다.

    오늘날 이슬람교도가 12억이나 되는 거대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내부의 평등성과 복잡한 의례가 없고 누구나 모스크(예배당)에서 꾸란을 읽으며 격의 없이 형제처럼 친숙해 질 수 있어서 첨단문명으로 인한 인간의 소외감을 해소하고 동료애를 느낄 수 있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독선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서방국가에서도 이슬람교도가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슬람교도들의 삶은 알라에 대한 복종과 헌신이다.

    그런가하면 그들 중에도 복종과 헌신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신의 곁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며 명상과 고행을 기본으로 수행하는 ‘수피파’라는 종파도 있고 이슬람교에서 금하는 음악을 기도에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단으로 금지되어 인도와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슬람의 눈으로 본 기독교에 대한 시각은,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의 종교라고 하면서 대부분의 전쟁은 기독교도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유일신교는 각기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하나의 신을 놓고, 서로 다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자기 눈에 비친 색깔만 주장하며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 세 유일신 종교는 같은 지역에서 같은 조상(셈족)을 둔 같은 혈통의 후손들이 각자의 업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원수가 되어 싸우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 깊은 바닥에는 유대교의 율법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끝없는 보복과 복수의 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슬람교도 역시 유대교와 기독교처럼 엄한 율법인 모세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투쟁의 기본정신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 모세5경의 출애굽기 34장13절에는 “너희는 다른 신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나의 이름은 질투하는 야훼 곧 질투하는 신이다.” 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지켜야할 10계명에, 불교의 10계는 첫째가 “산목숨을 죽이지 마라.(不殺生戒)”인데 그들은 첫째가 “내 앞에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라고 한다.

    그리고 여섯 번째에 “살인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신을 섬기기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식일에 쉬지 않는 것도 살인보다 무서운 죄가 된다.

    이처럼 그들은 야훼라는 신을 섬기기 위해 사람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순된 율법을 보고 예수님은 그것은 옛날의 약속이라고 하고 ‘사랑과 용서’라는 새로운 약속을 주장하다가 그들에 의해 처형된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교도 여전히 모세5경만은 그대로 믿으며 야훼를 알라로 호칭만 바꾼 뿐이다. 유일신을 섬기는 경쟁만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폭력의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유일신교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보면 초기에는 부족마다 각기 다른 신을 모시고 숭배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세월이 갈수록 숭배하는 신들의 수가 늘어나고 숭배하는 방법을 놓고 분열이 생기게 됨에 따라 다른 신을 부정하고 하나의 신만을 주장하는 유일신 사상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그로인해 고난을 겪고 있던 유대인의 결속을 위해 야훼라는 유일신의 탄생과 함께 그 신을 섬기고 숭배하기 위해 엄한 율법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유일신교의 출생배경이다.

    그래도 여전히 각기 다른 신상들을 메카의 카바신전에 모셔놓고 숭배하는 것을 무함마드가 메카를 정복하며 전부 파괴하고 ‘알라’만을 섬기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잡다한 신상은 파괴됨과 동시에 알라로 통일되어 이슬람교로 흡수되었다. 그래서 기존의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각자, 야훼와 예수와 알라만을 주장하며 오랜 세월을 자기가 섬기고 숭배하는 신만 주장하는 유일신으로 인한 투쟁과 보복으로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가 믿는 신만을 제일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골수에 깊이 의식화 되고 길들여져서 용서와 화해라는 사랑과 자비의 관용을 잃어버린 것이다.

    타민족의 구박과 천대로 고난을 겪던 유대인의 결속을 위해 만든 모세5경이란 엄한 율법을 예수님은 고쳐야 한다고 했지만, 유대교와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여전히 모순된 율법에 묶여서 유일신을 주장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은 말과 낙타를 타고 창과 활을 쏘며 싸웠으나 후손들은 지금 탱크와 미사일과 전투기를 동원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여전히 구약성서의 율법에 묶여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과 복수라는 조상의 정신적DNA를 물려받아 후손들이 그 업보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가슴을 열고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자기가 믿는 신만 주장하지 말고 신이 무엇인지 한번 깊이 성찰해 보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사랑과 자비로서 용서하고 화합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세상만물이 그러하듯이 종교도 독존(獨存)이 아니고 공존(共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랑과 용서’라는 복음의 씨앗을 다시 뿌리기 바란다.

    반야용선에 승선한 금강의 아름다운 도반님들은 금강카페의 주식과 간식을 통해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행복과 평화를 위한 마음의 양식을 차곡차곡 준비해 가고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방의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아랍지역의 석유자원을 놓고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느라고 그 지역의 민족이나 부족들의 전통이나 생활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강대국들의 편의에 의해 구획정리를 하는 식으로 지역을 분할하여 독립시키는 바람에 석유자원이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이 부국과 빈국으로 차이가 생기면서 또 다른 갈등과 불화의 소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분쟁이 더욱 심해지고 전쟁의 불씨를 새로 하나 더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서 어느 불씨가 되살아날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은 위험지역이 되고 말았다. 아랍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인 DNA는 구약성서의 율법인 유일신을 위한 끝없는 보복과 복수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또 강대국들의 편의에 의해 강제로 그려진 국경이 설상가상(雪上加霜) 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2차 대전이 종결되고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각자의 편의에 따라서 전리품을 나누어 가지듯이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에서 분할한 것과 같은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군인장교 대령 두 사람이 팬다곤(미국 국방성)에서 한반도의 지도를 펼쳐놓고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우리의 이름다운 금수강산의 허리를 잘라서 남북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그들의 판단에 따라서 분단의 경계가 정해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발단이 되어 민족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고 분쟁의 불씨가 된 것처럼 중동의 근대사도 우리와 비슷한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할 중요한 사항은 전쟁을 비롯한 인류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나 재난의 현장에는 언제나 신이 없고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신의 의도가 아니고 인간의 욕망으로 점철된 것이다. 더 깊은 얘기는 우리의 공부가 깊어 졌을 때 할 예정이다.

    종교에 대해서 좀 더 노골적인 분석을 해보고 싶지만 자칫하면 종교 간의 화해를 위한 본질이 손상될 우려가 있어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앞으로 우리의 일상을 통한 공부와 수행을 통해 실례를 들어가면서 그때 더 보충하기로 할 예정이다.

    위대한 성인의 말씀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현실성을 갖추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다음시간에는 다시 우리의 일상을 통한 공부를 위해 계란장수 김처사와 오순경을 만날 예정이다.

    금강카페에 입문을 안내하고는 아직 그분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지 않았는데 지난번 봉정암 참배 때 보니 계란장수 김처사는 보이지 않고 오순경만 보이는 것 같았다.(ㅋㅋ)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2012. 11. 20. 상락화.

    생사의 기로에서 마음을 비우고 깨달은 불교의 진리를 도반님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기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여전히 여러모로 부족한 범부중생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2013-01-14 11:47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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