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黃長燁 씨 가족들의 最後, 부인과 아들은 銃殺 당해
1997년 탈북(脫北)하여 월남(越南)한 뒤 2010년 서울에서 별세(別世)한 고(故) 황장엽(黃長燁)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북한 땅에 남겨두었던 가족이 맞아야 했던 비참한 최후에 관한 충격적인 소식이 최근 알려졌다. 고 황장엽 씨는 1997년1월30일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날 때 그 곳에 부인 박승옥 씨 및 아들 경모 씨 내외와 손자들, 그리고 딸을 남겨 두었다.
고인은 일본 방문을 위해 이날 가족을 남겨두고 평양을 떠날 때 부인에게도 탈북할 생각을 알리지 않고 떠나는 심경을 2006년 서울에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그의 회고록(回顧錄)(도서출판 시대정신 간행) 15쪽에서 31쪽에 걸쳐서 애절하게 적어 놓았었다. 그러나, 그가 북한 땅에 남겨두었던 가족들에게 닥쳐 온 운명은 비참한 것이었다.
고 황 씨의 탈북이 이루어진 뒤 그의 가족들에게는 즉각 자택 연금(軟禁)의 조치가 취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1997년 중반부터 2회에 걸쳐서 ‘국제인권기구’(구체적으로 어떤 국제인권기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음) 조사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고 황 씨 가족을 면담했고 그로 인한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북한 당국은 98년 후반까지 고 황 씨 가족을 그들의 자택에서 연금한 상태에서 엄중한 감시만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기간 중 고 황 씨의 부인 박승옥 씨는 이른 아침 집 근처에 있는 김일성(金日成) 동상의 대석(臺石) 청소를 하는 생활을 매일 반복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고 황 씨의 아들 경모 씨가 탈북을 시도하다가 실패함으로써 끝장이 났다. 경모 씨는 북한의 3대 째 세습 독재자 김정은(金正恩)의 고모부인 장성택(張性澤)의 형의 딸인 부인과 강제로 이혼을 당한 상태였다. 경모씨는 1998년 여름 그의 친구 한 명과 탈북을 목적으로 평양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의 탈북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공안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도보(徒步)로 평양을 떠난 그들은 2주일 후 평북 용천 근처에서 공안 당국에 체포되었다. 체포되었을 때 그는 9만8천 달어의 미화 현금을 지참하고 있었고 동행했던 그의 친구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평양으로 압송된 경모 씨는 그의 어머니 박승옥 씨와 함께 총살(銃殺)되었고 고 황 씨의 딸과 경모 씨의 두 아들은 14호 수용소로 끌려 간 것이 북에 남겨졌던 고 황 씨 가족의 마지막 소식이다.
고 황장엽 씨 가족들의 비참한 최후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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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黃長燁 씨 가족들의 最後, 부인과 아들은 銃殺 당해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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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정권시절 친북대통령들은 이러한 황씨를 무척 껄끄러워하며 신변보호란 구실하에 햇볕정책에
방해가 된다하여 그의 반북활동을 차단하고 연금하다시피 하여 남한에서 외로운 일생을 마치게 했다. 2013-02-16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