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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만배씩 3백일 용맹정진한 활연성 보살님--아들,딸들에게 108배 전수하다.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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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정진

 

 

“하고 싶은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해봐라.”

“책 많이 읽어라. 책 속에 길이 있다.”

“친구들과 모여 잡담하는 일에 시간 보내지 말고 멀리 여행을 가라.”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되도록 멀리하고,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발전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된 두 딸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책을 사고 여행가는 일에 드는 비용은 아낌없이 지원해주겠다고 해도, 딸들은 스마트폰의 세계가 더 흥미로운 것 같다. 여행을 가도 자연을 즐기면서 새로운 환경의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가까운 데로 가서 숙소를 잡고는 거기에서 노는 게 더 익숙한 것 같다.

신문도 잘 읽지 않기에 물어보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젊은 애들이 신문도 안 읽니? 대학생이면 사회문제에 관심도 가져야 하고 정보도 활용해야 하지 않니?”

나는 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감동을 잘 받는다.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기사를 읽고 난 아침에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정말이지 보약을 먹은 것보다 더 힘이 난다.

“무슨 소리야 엄마, 누가 요즘 신문 읽어? 스마트 폰으로 다 보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종이 신문을 받아들고 지면을 넘기며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여유를 아이들이 모르고 사는 것 같아 아쉽다.

환경이 오염된 도시 속에서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등 기계와 밀접한 생활을 하는 애들에게 책을 읽으며 고독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기계에 익숙한 환경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큰 딸이 한 해 휴학을 하고 세상 경험도 해보고 자신이 정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 부부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조용히 멈추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젊은 날에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은 행운이다. 네 생각대로 일 년 동안 살아봐.”

딸애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쓰고 저축도 하더니 친구가 일하고 있는 외국에도 다녀오면서 한 해를 그런대로 잘 보내는 것 같았다. 전공을 다른 분야로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그것도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개강을 두어 달 앞둔 어느 날, 아르바이트 자리도 그만두고 한가하게 보내고 있는 딸애에게 권했다.

“지리산 선림사에 가서 좀 있다 오지 않을래?”

휴학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하고 싶던 말이었다. 무슨 일을 하던 우선 고요히 멈추는 시간을 가진 다음 하라고 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휴학을 하자마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생각났을 때, 시간 났을 때 바로 해.”

무슨 일을 권하면 ‘다음에 할께’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에게 귀가 닳도록 내가 한말은 ‘미루지 않으면 순조롭다.' 였다.

“그럼 아빠가 가 계신 수도암으로 갈래.”

남편이 수도암으로 21일 기도정진을 하러 떠난 지 열흘 쯤 되었을 때였다.

“거긴 너무 춥고, 가족이 같이 있으면 정진이 잘 안 돼. 큰 맘 먹고 아빠가 정진하러 가셨는데, 네가 가면 방해되잖아.”

“선림사는 아는 사람도 없고 엄마, 그냥 수도암으로 가고 싶어. 아빠한테 방해 안 되게 조용히 있으면 되잖아.”

누가 그랬던가, 두려움이 혁신을 죽인다고. 딸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니 두려웠던 것이다. 지리산행으로 밀어붙이고 싶었지만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되도록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하고 싶어 며칠을 기다려주었다.

 

선림사엔 청년 포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법사님 한 분이 정진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장소는 물론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절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법사인 활연성보살님은 젊은 시절, ‘살아 있는 동안 하루에 1080배를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수십 년 동안 하루 1080배 수행을 하며, 수시로 청년들을 데리고 3천배, 만배 정진을 하고 있는 분이다. 사십대 중반일 때는 하루 1만배씩 3백일을 용맹정진한 분으로 우리 부부가 존경해마지 않는 재가수행자다.

아이들도 인사를 한 적이 있어 초면이 아닌데도 낯선 환경이 두렵고, 게다가 그곳에 가면 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해인사 백련암에서 나와 함께 3천배를 한 번 해본 이후 처음 시도해보는 정진이어서 부담이 더 컷을 것이다.

 

결국 큰애는 엄마의 설득으로 지리산으로 갔고, 다음날 ‘엄마, 고마워. 오길 정말 잘했어.’ 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곳에서 일 주일 머무는 동안 기본적으로 하루 1080배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마음대로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미 와 있던 선배도반과 산책도 하고 법사님의 이런저런 좋은 말씀도 들으며 지냈다고 한다. 자진해서 날을 잡아 하루는 3천배를 했는데 그곳에 있던 몇 몇 정진 선배들이 함께 해주며 격려해주었던 것이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 도반의 중요함을 경험한 셈이다.

“뭐가 가장 좋았니?”

집에 돌아온 딸에게 물어보았다.

“마음이 조용해졌던 게 좋았어. 조용해지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

“삼천배 할 때 힘들지 않았어?”

“힘들었지. 그런데 언니 오빠 들이 옆에서 함께 절하며 격려해주니까 더 힘내서 할 수 있었어. 처음 시작할 때는 3천 번의 절을 언제 다 하나 했는데, 조금씩 해나가니까 결국 끝나는 시간이 오더라구. 이제 뭐든 마음먹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하나하나 내 앞에 와 있는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게 인생임을 터득한 딸이 장해보였다.

“다음날 아침에 못 일어나지 않았니?”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던데. 3시에 새벽 예불하러 일어나는데도 별로 다리는 안 아프더라구. 여름방학 때 또 갈 거야. 그리고 3천배 해보고 나니까 아빠가 21일 동안 매일 3천배 하신 거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야호!

정말 듣고 싶던 말이었다. 고요해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는 게 진리 아닌가. 산사에서 일 주일 동안 머물면서 신심이 쑥 자란 딸이 더욱 활발발하게 청춘을 만끽하리라 믿는다.

 

요즘 작은 딸아이가 제 언니의 정진에 자극을 받아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 인생의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엄마, 매일 108배 하면 진짜 소원이 이뤄지는 거지?”

“당근이지.”

“확실하지? 만약 안 이뤄지면?”

“엄마가 책임져!”

“어떻게?”

“끝나고 100일 후 얘기해, 그건!”

이렇게 딸들이 수행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월간 불교 4월호 '박원자의 수행일기' 코너에 실린 글이랍니다.)

오늘 1년 여 정도 연재하던 마지막 5월호 원고를 쓰면서 읽어보니

새삼스럽게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 강길형 이런 재가수행자가 있는한 한국불교는 희망이 있다, 2013-05-08 11:07 댓글삭제
  • 강길형 영향으로 발심
    역경 속에서 매일 삼백배
    하심 하는 마음 배우면서
    고통 줄고 행복을 되찾아




    ▲정심화·59


    불교를 접하게 된 건 신심 깊었던 시어머니(공덕월 보살님)의 영향 때문이었다. 40대에 홀로되신 시어머님은 4형제를 키우면서 그 가난하고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불심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에도 절에 불사가 있을 때면 보시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탓에 당대 큰스님으로 알려졌던 금오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았고 가까이에서 시봉하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염불을 놓치지 않으셨다. 아침저녁으로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도 염주를 돌리는 것을 자주 보았다. 새벽마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셨고, 금강경도 열심히 읽으셨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염불이 뭔지도 모르는 나에게 “출근길에 꼭 염불을 하라”고 말씀하셨고, 침실 머리맡에 늘 천수경 독송집을 갖다 두고 틈틈이 읽으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불교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직장에 다니던 동료직원으로부터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망치로 얻어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 ‘불교는 할머니들의 종교’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나로서는 젊은 남자 직원이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것도 새로웠지만, 예불문은 물론 천수경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더구나 매일 108배를 한다는 말을 듣고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불교에 관한 책을 읽었고 퇴근 이후 조계사에 들러 예불을 올리고 법회 때는 스님의 법문도 들었다. 또 매일 108배를 시작했고 휴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충북 괴산에 있는 공림사를 찾아 당시 탄성 큰스님의 법문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늘 가르침을 주시던 탄성 스님께서 입적하시면서 공허한 마음이 들면서 한 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다. 매일하던 108배도 중단했고, 절에 가던 횟수도 줄어들었다. 한참을 방황하다 다시 절 수행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경부터다. 개인적인 금융문제로 가족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할 곤경에 처하게 됐다. 아무리 둘러봐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하고 초조해지면서 마음은 늘 불안했다. 이렇다보니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횟수도 늘었고 언성을 높이는 날도 잦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심각한 마음의 병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즈음 문득 “모든 고통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늘 참회하고 하심 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큰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절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절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일배일배에 정성을 담아 정성껏 절을 올렸다. 절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 탐심에 빠졌던 스스로에 대한 참회였다. 그렇게 매일 300배를 시작한지 몇 달 만에 도무지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던 금융문제가 손쉽게 해결됐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매일 300배 정진을 실천하고 있다.


    절을 시작한 이후 삶이 크게 바뀌었다. 늘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그로인해 많은 고통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그런 고통에서는 벗어나 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존재가 불보살님이라는 생각으로 모시다보니 갈등도 없어지고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다. 내가 변하니 자연스럽게 가족들도 변했다. 신심 깊었던 시어머님은 나에게 아주 소중한 불법이란 유산을 남겨주시고 가셨다. 그 인연에 감사하며 매일매일 수행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2013-05-11 11:30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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