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게 된다. 그 기간 중에 한반도에는 결정적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1990년 독일 통일을 지켜본 소련 지도자는 고르바초프였다. 어쩌면 시진핑은 한반도 통일을 목격하는 중국 지도자가 될지도 모른다. 완전 통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통일 과정이 시작될 수는 있다.

중국은 집단지도체제지만 주석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덩샤오핑이나 장쩌민이 그랬다. 독일 통일에 고르바초프가 역할을 했듯이 한반도 통일에 시 주석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한반도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통일한국은 다가오고 있으며 통일한국이 중국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인식이 시 주석의 뇌리에 자리 잡는다면 이는 역사발전에 긍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27일 정상회담은 박근혜-시진핑 체제의 시작이다.
두 지도자는 비슷한 인생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두 사람은 권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2년에 태어난 박근혜는 아홉 살에 권력자의 딸이 됐고 그 위상은 18년 동안 지속됐다. 53년 시 주석이 태어날 때 아버지 시중쉰은 공산당 실세였다. 시중쉰은 서북지방 당·정·군 책임자였는데 베이징으로 차출돼서는 저우언라이 총리의 비서실장이 됐다. 시진핑이 귀족처럼 성장하던 50년대,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죽었다. 또래들이 굶을 때 시진핑은 입에 금 숟가락을 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이 사치스러운 건 아니었다. 아버지 시중쉰은 항상 근검절약과 혁명정신을 강조했다. 박근혜도 여유로웠을 뿐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도 검소했지만 특히 어머니는 근검을 몸소 실천했다.
박근혜와 시진핑은 모두 비극적인 추락을 겪었다. 아버지가 피살된 후 박은 청와대를 나와 권력이 없는 생활을 시작했다. 은둔생활은 18년 동안 이어졌다. 시진핑이 아홉 살이던 때 아버지 시중쉰은 반당분자라는 모함을 받아 연금됐다. 13세가 되던 해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쳤다. 다니던 귀족학교는 해체됐고 시진핑은 서북지방 산골마을로 하방(下放)됐다.
박과 시는 똑같이 하락을 겪었지만 신고(辛苦)의 강도는 차이가 크다. 아버지 정권에 대한 공격과 사람들의 배신으로 박근혜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사회적인 위상과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시는 철저하게 바닥까지 떨어졌다. 오지 마을에서 시는 주민과 똑같이 요동(窯洞)이라 불리는 동굴생활을 해야 했다. 농사일은 중노동이었고 더 힘든 건 이와 벼룩이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어대는 바람에 시의 피부는 피투성이였다.
시진핑은 3개월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쳤다.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시는 결국 하방을 택했다. 오지로 돌아가 기층 민중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마음 먹었다. 6년 만에 시는 지방 공산당 요원이 됐다.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홍순도, 『시진핑』).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지도자는 시각이 실용적이며 종합적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북한 문제에서 시진핑은 핵뿐 아니라 ‘인민을 굶기는 실패 국가’라는 측면을 중시할 수 있다. 중국통인 이세기 전 통일원 장관은 “시 주석은 전임자들보다 더 시장 친화적이고, 더 실용적이다. 이게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러 면에서 중국은 변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지도자들이 근원적이며 종합적인 처방을 고민하기 시작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배고픔을 아는 시 주석이 이런 흐름을 주도한다면 이는 한반도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와 시진핑은 시대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잘 엮이면 그들은 역사적인 과업을 해낼 수도 있다. 그것은 동북아 2500만 인류를 비(非)문명에서 구해내는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중국은 집단지도체제지만 주석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덩샤오핑이나 장쩌민이 그랬다. 독일 통일에 고르바초프가 역할을 했듯이 한반도 통일에 시 주석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한반도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통일한국은 다가오고 있으며 통일한국이 중국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인식이 시 주석의 뇌리에 자리 잡는다면 이는 역사발전에 긍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27일 정상회담은 박근혜-시진핑 체제의 시작이다.
두 지도자는 비슷한 인생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두 사람은 권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2년에 태어난 박근혜는 아홉 살에 권력자의 딸이 됐고 그 위상은 18년 동안 지속됐다. 53년 시 주석이 태어날 때 아버지 시중쉰은 공산당 실세였다. 시중쉰은 서북지방 당·정·군 책임자였는데 베이징으로 차출돼서는 저우언라이 총리의 비서실장이 됐다. 시진핑이 귀족처럼 성장하던 50년대,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죽었다. 또래들이 굶을 때 시진핑은 입에 금 숟가락을 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이 사치스러운 건 아니었다. 아버지 시중쉰은 항상 근검절약과 혁명정신을 강조했다. 박근혜도 여유로웠을 뿐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도 검소했지만 특히 어머니는 근검을 몸소 실천했다.
박과 시는 똑같이 하락을 겪었지만 신고(辛苦)의 강도는 차이가 크다. 아버지 정권에 대한 공격과 사람들의 배신으로 박근혜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사회적인 위상과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시는 철저하게 바닥까지 떨어졌다. 오지 마을에서 시는 주민과 똑같이 요동(窯洞)이라 불리는 동굴생활을 해야 했다. 농사일은 중노동이었고 더 힘든 건 이와 벼룩이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어대는 바람에 시의 피부는 피투성이였다.
시진핑은 3개월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쳤다.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시는 결국 하방을 택했다. 오지로 돌아가 기층 민중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마음 먹었다. 6년 만에 시는 지방 공산당 요원이 됐다.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홍순도, 『시진핑』).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지도자는 시각이 실용적이며 종합적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북한 문제에서 시진핑은 핵뿐 아니라 ‘인민을 굶기는 실패 국가’라는 측면을 중시할 수 있다. 중국통인 이세기 전 통일원 장관은 “시 주석은 전임자들보다 더 시장 친화적이고, 더 실용적이다. 이게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러 면에서 중국은 변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지도자들이 근원적이며 종합적인 처방을 고민하기 시작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배고픔을 아는 시 주석이 이런 흐름을 주도한다면 이는 한반도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와 시진핑은 시대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잘 엮이면 그들은 역사적인 과업을 해낼 수도 있다. 그것은 동북아 2500만 인류를 비(非)문명에서 구해내는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홍찬선의 네글세상]지피지기(知彼知己)와 기불가실(機不可失)
머니투데이 | 홍찬선 부국장겸 산업 | 입력 2013.06.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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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페로 고객센터 이동 [머니투데이 홍찬선부국장겸 산업1부장][편집자주] 고진감래(苦盡甘來) 새옹지마(塞翁之馬) 지지불태(知止不殆)... 네 글자로 만들어진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우리 조상들의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생활의 지혜이자 인생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처럼 선조의 지혜는 현재와 미래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표가 됩니다. 사자성어를 통한 '네글세상'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한국 경제와 사회 문화 등을 생각해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홍찬선의 네글세상] < 9 > 지피지기(知彼知己)와 기불가실(機不可失)]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7일 중국을 국빈방문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4년여 만에 만나 정상회담을 하며 앞으로 5년 동안의 새로운 한중관계를 놓고 치열한 지력(智力) 싸움이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92년 수교를 맺은 뒤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경제에 치중됐던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에서, 경제는 물론 정치와 군사 등을 아우르는 진정한 협력관계를 만드는 과제해결이 앞에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중국의 협조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양국의 공조,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협력 방안모색도 시급하다.
중국 지도자들은 사자성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상대방을 불쾌하지 않게 하면서 필요한 것은 얻어낸다. 시 주석은 2011년 7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방중했을 때 '피가 물보다 진하다(血濃于水, 혈농우수)'는 말로 립서비스 했다. 올 중국지도자 신년 하례회에서는 '여럿이 함께 땔감을 넣으면 불꽃이 세다(衆人拾柴火焰高)'라며 자발적 참여를 강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2008년 정상회담에서는 '전략적파트너'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한미동맹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했지만, '5.24조치' 이후 남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은 계속 북한 편을 들었다.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중국을 가장 많이 아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명한 중국철학자인 펑여우란의 『중국철학사』를 중국어로 읽고, 통역 없이 중국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방중했을 때 요청이 있다면 중국어로 연설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다만 잘 안다고 생각할 때가 위험한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와 미래는 옛날과 다른데도 과거에 비춰볼 때 이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의 '말의 성찬'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2000년의 고도(古都)인 시안(西安)을 방문하기로 한 것은 절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의 고향에서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를 바탕으로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형 1석2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한중 양국을 둘러싼 환경은 매우 빠르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성행했던 가공무역의 좋은 시절은 끝났다. 중국은 도시화와 중서부대개발 및 7대 신흥전략산업 육성 등을 통해 미국마저 제치고 패권국가(G1)로 부상하는 중국굴기(中國?起)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들어 8세대 LCD나 전기자동차 및 차세대 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중국에 진출했던 수많은 한국 기업이 무더기로 사업을 접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지난해 10월, 중국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시 주석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란 목표를 제시했다. 2018년 전후해서 경제규모(GDP)가 미국마저 추월할 것으로 전망돼 이런 목표는 이미 가시권에 있다. 하지만, 중국이 패권국이 되기 위해선 정치사회군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를 위해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에서 미국과의 기술력을 축소시키기 위해서도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어쩌면 향후 5년은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마지막 5년이 될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중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거리'를 지렛대로 한반도 통일과 새로운 한중관계 정립의 교두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는 놓쳐서는 안된다(機不可失,기불가실).
한번 놓친 기회와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時不再來, 시부재래). 2013-06-25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