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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1)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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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1)

 

  교통수단으로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면 대개가 자가용보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는 쪽이 보편적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대체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다. 흔히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인생이다.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주로 무임승차의 혜택을 누리는 그레이칼라 인생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 만큼 성장하는데 젊음을 바침은 물론, 그에 상응한 세금을 지난세월동안 납부한 대가로 국가에서 복지차원에서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항간에서는 ‘지공선사(地空禪師)’라는 재미있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 한마디로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간의 연륜을 통하여 인생을 어느 정도 달관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진 매우 유머러스한 별칭인 셈이다. 하지만 요즘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생활이 팍팍한 탓인지 조그만 참고 양보하면 될 일을 내가 마땅히 대우받아야할 노인이라는 생각에서 간혹 예의없는 젊은 사람과의 시비로 소란스러운가하면, 노인과 노인 간의 다툼이나 노인과 아주머니와의 다툼에서 지나치게 심한 말들이 오가는 것을 목격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지공선사라기 보다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추장스런 늙은이로 취급을 당하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생기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언젠가 노인석에서 80대 초반의 두 노인이 나란히 앉아 가는 세월을 한탄하며 신세타령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야기인즉 그 나이에 직장에도 다니지 못하니 돈도 벌지 못하고 무위도식하니 집안사람이나 주변으로부터의 시선이 몹시 부담스럽다면서 한탄하는 것이었다. 듣고 있자니 노인들이 지나치게 자학적인 것 같아 내가 말을 거들었다. 공손한 태도로 노인들의 나이를 여쭈어보고는 내가 한 말씀 드려도 좋은지 양해를 구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사람이 오래 살아 노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세상에 아무리 수명이 늘었다고 하지만 젊어서 죽는 사람이 노인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적어도 노인이 된다는 것은 지난세월 누군가를 위해 그만큼 노력하고 자기관리를 잘 했기에 그 복으로 지금의 노인이 된 것으로 결코 노년의 삶을 부끄러워하거나 자학할 일이 아닙니다. 직장도 없고 수입이 없어 가족이나 자식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마세요. 인생이 늙어가면서 어떻게 삶을 아름답게 꾸려나가야하는가 하는 문제를 아무도 젊은이들에게 직접 본을 보이거나 가려쳐주는 사람이 없지만 당신들은 그런 일을 할 수 가 있습니다. 비록 늙어가지만 고집스럽지 않으며 어른으로서의 주장보다 젊은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며, 잘 하는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잘못하는 일에는 적당한 꾸중과 관용을 베풂으로서 젊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비록 나이가 많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며, 무언가 자기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을 사신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보람 있고 귀감이 되는 삶입니다.

  시골 동네 쉼터에 자리 잡은 오래된 정자나무가 심한 비바람은 막아주지 못할지라도 무더운 여름철에 나무그늘을 제공함으로서 사람들의 땀을 식혀주고 헐떡이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듯이 노년의 삶도 얼마든지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그 존재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더니 두 노인은 얼굴에 웃음꽃을 환히 피우며 지금까지 살면서 왜 내가 그런 생각을 못했지 하면서 고마워하였다. 물론 나도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늘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희망과 기쁨을 준다는 것은 곧 스스로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닐런지.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3. 7. 10)/청강 허태기 - 

  • 김상래 매우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서 남은 생을 여한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2013-08-02 20:31 댓글삭제
  • 허태기 올해는 더위와 장마가 유달리 심한 것 같습니다. 무더위도 이제 20여일 남짓이면 지나가겠지요. 늘 건안하시길 바랍니다. 2013-08-06 09:57 댓글삭제
  • 김혜숙 대 선배 포교사님,멋지십니다!
    저는 지금의 차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때가되면 어느 고요한 산사에 들어 부처님 상호 이야기, 수인 이야기 협시보실이야기 단청 이야기 공포 이야기 꽃살문 이야기 젊은 이들에게 해주면서, 차 한 잔 맑게 우려주면서 그렇게 살고자 해요.
    머리 하얀 할매가 햐~ 감동이겠다 그쵸?^^
    2013-08-12 18:30 댓글삭제
  • 허태기 고요한 산사에 들어 부처님 상호 이야기, 수인 이야기 협시보실이야기 단청 이야기 공포 이야기 꽃살문 이야기 젊은 이들에게 해주면서, 차 한 잔 맑게 우려주는 삶.. 소박하면서도 맑고 아름답게 여생을 보내고자 하시네요. 소망대로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지우. 2013-08-14 09:59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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