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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3)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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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3)

 

  올 여름은 유난히도 장마가 길었다. 장마가 그친 사이 날을 틈탄 아침나절 옛날 군 생활을 같이 하던 친구 셋과 함께 도봉산 산행을 했다. 이들은 모두가 청춘을 군에 바친 고급장교출신들로 서로를 배려하는 편한 사이다.  잊을 만하면 전화로 소식을 묻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끔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도봉산 등산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다.  

  도봉산 입구 근처의 가게에서 막걸리와 먹 거리를 사서 배낭에 넣고는 도봉산을 찾는 수많은 등산객들의 틈에 끼어 구룡사(龜龍寺)가 있는 계곡으로 올라 사람들이 없는 적당한 장소를 골라 터를 잡았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구고 막걸리 잔을 기우리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와 함께 정담을 주고받았다. 나는 건강상 술을 못하기에 술 한잔 받아놓고 닭이 물마시듯 홀짝거리며 분위기에 동참했다. 술잔이 끝나고 김밥과 김치 등 간소한 음식과 과일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친구가 준비해온 화투와 백 원짜리 동전 뭉치로 고스톱을 쳤다. 나는 무슨 일이든 한번 하면 깊이 빠지는 단점이 있다. 화투나 투기는 하다보면 본전을 찾아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겠다는 심리작용으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이다. 오기와 집착이 강할수록 수렁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잘하면 한탕, 못해도 본전만을겠다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도박의 유혹이다. 순진한 사람일수록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이다. 나도 젊었을 적에 가정불화를 겪을 정도로 고스톱에 몰입한 때가 있었지만 생각을 바꾸고 고스톱에서 손을 떼었다. 그 후로 어언 20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화투를 만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고스톱을 좋아하는 친구가 얼마 후 일본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같이 즐기는 의미에서 화투를 친 것이다. 백 원짜리 동전 내기이지만 자연히 경쟁심리가 발동되었다. 돈을 잃기는 싫고 따기도 멋 적고 하여 욕심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치다보니 운이 좋아 결과적으로 내가 성적이 제일 좋았다. 잠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친구의 "나는 고스톱을 위해 십년간 관악산에서 도를 통했다"고 흰 소리 치던 거창한 거드름을 무색케 한 것이다.   

  고스톱에서 "GO"하다가 박을 쓰는 경우, 남의 비극이 나의 기쁨이라는 웃지 못 할 아이러니를 자주 경험한다. 이래서 흔히 '신선놀음'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인격수행이 요구되는 데에서 비롯된 말인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질시 속에서 웃고 즐기다가 시간이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장원한 덕택으로 내가 음식쓰레기를 챙겨 비닐봉지에 담아들고 친구들과 같이도봉산 도로로 내려오는데 까마귀가 유달리 울어댄다. 무슨 사연이 있어 까마귀는 저렇슬피 우는가하고 혼자 말을 하고 내려오는 도중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 틈바구에서 뒷걸음질을 하다가 그만 오른발을 비끗하여 나도 모르게 나뒹굴어지고 말았다. 도로 움푹 파인 곳에 발을 헛딛고 만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소리 지를 기운도 없었다. 손에 들었던 쓰레기봉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 마침 지나가던 중년자가 다가와서 재빨리 양말을 벗기고 다친 부위에 파스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익숙한 솜씨로 대로 발을 감싸주면서 응급조치는 하였으니 천천히 내려가서 병원에 들려 치료받으고 한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명함이라도 주고 가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사라져버렸다. 그사이 친구들이 와서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것 같다고 안심 시키면서 오늘은 부모님 기일로 아무래도 조상님들에 대한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변명했다. 친구들이 비닐봉지에 흩어진 쓰레기들을 주워 담았다. 

  다친 사람을 정성 것 돌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한 등산객의 멀어져 가는 모습에서 문득 금강경(金剛經)의 '응주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무릇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3. 9. 11)/청강 허태기 - 


 

 

 

 

 

 

 

  • 강길형 술주 酒 酎 모두에는 닭유酉자가 들어가네요,술은 닭이 물을 마시듯,
    또는 닭이 마디마디 마시듯 하는것 이라니,오늘 술은 건강을 위하여 보약을 마신듯하네요,탐심이 치성한 인간들은 폭탄주까지 만들어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어느순간 건강을 잃고 후회한들 이미 때가늦어 고통을 받지요?, 유익하고,느낌이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2013-09-30 15:33 댓글삭제
  • 허태기 미치지 않으면 닿지 못하고 지나치면 넘쳐버리니, 과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다고 했지요. 모든 일은 중도가 제일인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3-10-01 10:48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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