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親北이 親日보다 더 악질인가?'라는 아래 글은 내가 8년 전에 쓴 이후 가장 많은 욕을 먹은 기록을 갖고 있다. 親北(韓정권) 세력의 민족반역성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다시 싣는다. 이번엔 욕보다 찬동이 더 많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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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親北이 親日보다 더 악질인가?
親北派가 親日派를 고발하는 것은 强盜가 竊盜(절도)를 고발하는 것과 같다!
조국이 없을 때의 친일파와 조국이 있는데도 반역한 자, 반성한 親日派와 반성하지 않는 親北派, 살기 위하여 한 굴종과 알고 한 반역의 차이.
趙甲濟
1. 日帝 시대에 한국인의 선택은 抗日독립운동하여 죽거나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여 살면서 實力을 길러 독립준비를 할 것인가의 兩者擇一이었다. 적극적으로 日帝의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朴正熙, 申鉉碻, 白善燁 같은 분들이 日帝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실력을 길러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다(북한군의 남침에 대항하여 조국을 지켜낸 한국군 지휘관들은 거의가 일본-만주군 장교로서 전술을 배웠던 이들이다). 親北좌익들은 이런 사람들까지 친일파로 몬다. 국가가 없었을 때의 親日은 본심이 아니라 거의가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親北派(從北派)는 어떤 이들인가?
2. 親北派(親김일성-김정일파)는 대한민국 체제의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국가반역을 선택한 이들이다. 親北을 하지 않는다고, 즉 반역을 하지 않는다고 이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보낼 세력은 없다. 親北派가 되는 것은 헌법과 국가에 대한 반역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 조국이 있음에도 자발적인 반역을 선택한 것이다. 親北派는, 사사건건 조국을 만든 사람들을 물어뜯고 북한정권을 비호하면서도 단 한 사람 북한에 가서 살겠다는 이가 없다.
3. 대부분의 친일파 인사들은 대한민국이 建國된 이후에는 조국 건설에 참여, 日帝 때 배운 기량을 공동체를 위하여 썼다. 일부 친일파들은 김일성에 의하여 중용됨으로써 민족반역의 길을 택하였다. 21세기 한국의 친북파들은 대한민국이 建國된 이후에도, 즉 조국이 있음에도, 또 공산주의가 무너진 다음에도, 민족반역자와 학살자 편을 드는 용서 받지 못할 인간집단이다. 반성한 친일파와 반성하지 않은 親北반역자, 누가 더 나쁜가?
4. 현재 살아 있는 친일파는 없다. 친북파는 지금 힘이 세다. 친일파는 국가와 헌법에 危害를 끼칠 수가 없다. 친북파는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요인이다. 친일파 청산은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친일파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있을 뿐이다. 친북파에 대한 斷罪와 청산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다. 친일파 유족들로부터 재산을 몰수한다는 法理가 성립된다면 親北派의 경우엔 그 당사자로부터 재산을 몰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5. 친일파의 상당수는 2차세계대전 때 정보가 부족하여, 즉 日帝가 승리하고 있다고 믿은 나머지 親日행동을 했다. 친북파는 大明天地의 정보화 시절에 김정일과 김일성의 악마적 행동을 다 알고도 이들에게 魂을 팔고 있다. 모르고 한 굴종과 알고 한 반역, 어느 쪽이 더 나쁜가?
6. 我軍의 장수(고종)가 항복하고 그 후손들은 일본군의 장교가 되었는데, 졸병들(나라 잃은 백성들)이 끝까지 싸우지 않고 항복하여 만주군, 일본군에 들어갔다고 벌을 준다? 너무 잔인하지 않는가?
6-1. 친북파는 日帝가 아니라 지금의 일본을 호평하면 '친일파'라고 욕한다. 지금의 일본은 한국과 친선관계를 맺은 민주주의 체제의 나라이고 북한정권은 독재체제이며 敵이다. 韓美日 동맹의 일원인 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국익을 위하는 길이다. 이런 사람들까지 '친일파'라고 욕하는 것은 좋게 보아 시대착오이다.
7. 親北派가 親日派를 고발하는 것은 强盜가 竊盜(절도)를 고발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상을 덮고 애국세력을 약화시켜 반역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철 지난 친일파 타령으로 인민재판을 벌임으로써 공동체의 단합을 파괴한다.
8. 역사는 친북파에 가혹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그들이 남긴 거짓말, 폭언들이 너무나 많다. 代代로 웃음꺼리가 되고, 子孫들까지 그들을 외면할 것이다. 오늘의 法網을 피한다고 해도 후손들에 의하여 斷罪될 것이다. 불쌍한 영혼들이다.
왜?, 親北,從北이 親日보다 더 惡疾가?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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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親北이 親日보다 더 나쁜가?
親北派는 오늘의 法網을 피한다고 해도 후손들에 의하여 斷罪될 것이다. 불쌍한 영혼들이다.
경제는 韓中美日이고, 안보는 韓美日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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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편에서 볼 때, 현명한 선택은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명분이나 오기나 인기를 뜨거운 가슴에서 떨쳐내고 차가운 머리로 자유의사에 따라 내리는 결단이다. 강자는 대체로 선택의 폭이 넓지만, 약자는 대체로 선택의 폭이 좁다. 따라서 강자는 설령 선택에서 오류를 범하더라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지만, 약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조금만 실수해도 후에 치명적인 결과를 맛보게 된다. 막상 위기가 코앞에 닥치면 약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스스로 선택한 운명의 덫에 갇힌 고양이 신세로 전락하면, 하늘을 두 쪽 낼 듯이 분기탱천해 봐야 지나가는 쥐한테조차 비웃음을 산다. 모름지기 약자는 위기가 보일 듯 말 듯 아물거릴 때, 명분에 구애 받거나 오기에 휩쓸리거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의사로 냉정하게 결단해야 하고, 힘을 집중하여 부단히 전후좌우 경계하면서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한국과 그 이웃 나라를 살펴보면, 미국은 최강자로서 지정학적(geopolitical)으로 선택의 범위가 가장 넓다. 그 다음으로는 일본, 러시아, 중국, 한국의 순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상 반란단체이지만 사실상(de facto)의 국가인 북한은 이제 선택의 범위가 거의 없다. 음흉한 큰형님을 믿고 핵 프로그램으로 너무 까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고르바초프 덕분에 모처럼 눈치 안 보고 현명하게 그 때까지 걸어온 깡패의 길을 버리고 선남선녀의 길을 선택할 호기가 왔지만, 1986년 도이모이를 선택한 베트남과 달리 그것을 단번에 박차 버리고 죽을 꾀를 내어 일로 매진했다. 한편 선진부국의 문턱에 들어선 한국은 세계 2대 화약고를 제거할 수도 있었던 멋들어진 선택, 곧 북방정책의 묘수를 터뜨리고도 어이없게 금방 북한의 죽을 꾀의 수순에 흉내 바둑 두는 ‘우리끼리’ 정책으로 자유통일의 대마를 외통수에 몰아넣었다. 그것은 북방정책 이전의 반공정책보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 때부터 한국은 내분으로 갈가리 찢어지고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세계 최강자인 미국에게 단단히 찍혀 버렸다. 반면에 북한은 중국이 국내의 경직된 정치체제 탓에 실지로는 러시아보다 지정학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서 자신의 죽을 꾀에 중국을 끌어들였다. 독재의 세습에는 그것이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만.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유일무이하게 현명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19세기에 이미 세계열강에 진입한 바 있다. 일본은 21세기 벽두에도 경제의 활력을 많이 잃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 2위 외환보유고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 덕분에 지정학적으로 선택의 범위가 중국보다 넓다. 그런데도 일본은 명분에 연연하지 않고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철저히 실리를 취한다. 비굴할 정도의 웃음을 띠고 아시아의 비웃음을 사면서 미국의 바짓가랑이에 찰싹 달라붙는다. 2013년 10월 3일, 마침내 그들은 68년 동안 은인자중했던 혼네(本音)에 대한 확답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냈다. 일본의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하늘과 바다와 육지,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 미국 수준의 첨단 무기 체제를 갖추고,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에 버금가는 동맹 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핵무기만 없는데, 이제 그것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갖출 수 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일본의 군사 기술은 스텔스기 핵심 기술을 비롯하여 미국을 능가하는 기술이 숱하다. 두 나라가 협력하면 여기서도 윈윈(win-win)할 수 있다. 21세기의 미일동맹은 힘의 차이가 두드러졌던 옛날의 미영동맹보다 훨씬 막강하다.
미국은 핵무기 1만 기보다 위력적인 달러 발권력을 갖고 있지만, 2008년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금융위기 이후 여전히 실물 경제가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여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는 국가 부채로 그대로 전가되어 전 세계의 국가 부채를 합한 것만큼 국가 부채(약 17조 달러)가 많아졌다. 국방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국가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에서 제일 크지만, 다행히 약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기 때문에 재정 면에서 미국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 게다가 국방비는 GDP의 1%밖에 안 된다. 당장 2%까지 높이는 데 별 문제가 있다. 그 정도면 미국과 충분히 방위비를 분담할 수 있다.
미일 군사동맹이 겉으로 겨냥하는 잠재적 적대국은 핵무기 자살폭탄을 온 몸에 친친 감고 협박을 일삼는 북한이지만, 속으로 겨냥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양국이 내세운 명분(shared values)은 4가지다. 민주주의(democracy), 법치(the rule of law), 자유롭고 개방적인 시장(free and open markets), 인권존중(respects for human rights), 이 중에서 북한은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중국은 경제 한 부문만 충족시킨다. 다행히 한국은 호주와 더불어 이 4가지 모두 갖추었다. 미일 양국은 중국과 북한에는 사실상 최후의 통첩(ultimatum)을 날리면서 한국에게는 선택의 자유를 주고 있다. 특별히 미일 양국은 한국과 호주를 미일동맹의 탁자에 놓인 한 자리를 비워 주겠다고 친절하게 정답도 넌지시 알려 주고 있다.
“양국의 (관계) 장관들은 특별히 정규적으로 수행된 호주/한국과 3자회담을 주목했습니다.”
(The ministers ... noted in particular the success of the trilateral dialogues carried out regularly with Australia and the Republic of Korea.)
미국이 미시시피강을 가득 채울 4만여의 붉은 피로 지킨 한국을 특별히 미일동맹의 한 축으로 초대한다는 의미이다. 한국과 호주를 합하면 일본에 준하는 지정학적 힘을 가졌다고 인정받은 것이기도 하다. 한미연합사 해체 요구로 현실화된 반미(反美)정서로 한미혈맹에 균열이 가긴 했지만, 미국이 대서양과 서북인도양에서 동북태평양으로 전략 중심축을 이동하는 세기적 결단을 내리면서, 원칙과 신뢰의 새 정부가 들어선 한국을 최대한 예우한 것이다.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미일동맹이 결실을 맺는 2014년까지 한국에게 말미를 준 것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의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공유한 가치 중에서 시장경제 외에는 공유하기 어렵다. 이중에서 중국이 공산체제를 고수하면서도 북한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중국도 실천하고 있는 시장경제다. 둘째는 법치다. 이 법치는 국제규범(international norms)에도 적용되니까, 이것을 내세워, NPT와 IAEA를 내세워 북핵을 더 이상 두둔하지 않고 완벽하게, 검증 가능하게, 돌이킬 수 없게 제거해 주는 것(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이다. 한국은 여기에 더하여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탈북자의 인권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맞서려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중국인의 인권은 미국에 맡기고 한국이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의 헌법에 따라 엄연히 한국인인 탈북자의 인권은 한국이 중국의 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으로 G2의 한 축을 담당한 중국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다.
골수에 박힌 중국의 중화사상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는 없다. 지난 2000년 간 중국은 한국의 최대 적국이었다. 다행히 676년 8년 전쟁 끝에 신라에게 쫓겨난 이래 중화족은 더 이상 군사력도 만만찮고 문명 수준도 중국에 버금가는 한반도의 통일국가를 넘보지 않았다. 형님 대우해 주면 족했다. (병자호란의 청나라는 만주족의 나라였음.) 임진왜란과 6.25동란 때 중화족은 구원병을 보냈다. 임진왜란 때는 고마웠지만, 6.25동란은 그렇지 않았다. 1592년 일본은 침략국이었지만, 1950년 한국은 피침략(被侵掠) 국가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자료 공개로 거짓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직도 북침을 교과서에서 버젓이 가르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철두철미 북한 편이고 여차하면 ‘침략자’인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한국마저 포함하여 동북 4성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속내다. 중국은 보란 듯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기도 한다. 미국은 태평양 저 편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영토야욕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중국은 한반도와 두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있을 따름이니까, 서남공정과 서북공정으로 티베트와 위구르를 삼켰듯이 언제든지 한반도에 힘의 공백이 생기면 100만 인민군을 거느린 총독을 파견할 수 있다.
한국에게 주한미군은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도 동시에 견제하는 꽃놀이패다. 독일이 그러하듯이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은 주둔시켜야 한다. 그건 한참 후의 일이고, 지금 당장은 한국도 선택의 자유가 있을 때 가치를 공유하는 미일동맹에 한 다리를 걸쳐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FTA로 양국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은 중국에 1343억 달러를 수출하고 808억 달러를 수입하여, 535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미국에는 585억 달러를 수출하고 433억 달러를 수입하여, 152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일본에는 388억 달러를 수출하고 644억 달러를 수입하여, 256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무역의존도는 대중(對中) 20.1%, 대미(對美) 9.5%, 대일(對日) 9.7%였다. 경제적으로 한국에게 중국은 이제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커졌다. 게다가 대중 무역흑자는 한국의 전체 흑자 279억 달러의 약 두 배나 된다. 경제적으로는 중미일(中美日)의 순으로 중요하지만, 군사적으로는 미일호(美日濠)의 순으로 중요하다. 반일(反日)감정에 눈이 멀어 우물쭈물하다가 미일동맹에 한 다리를 걸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100년의 후회로 이어질 것이다.
반일감정을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미일동맹의 4가지 명분 중에서 인권에 집중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에 집중하여 미국과 중국까지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건 충분히 가능하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요구는 억울해도 억장이 무너져도 더 이상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독일도 어디까지나 나치의 만행, 인권유린에 대해 거듭거듭 사과하지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절대 사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확대하면 서구 전체가 제국주의에 대해서 사과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그건 한국이 세계 최강이 되기 전에는 국제적 호응을 얻을 수 없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세계최강이 된다면, 그 때는 사과하라고 할 필요 없이 딱 35년간만 일본을 민주적으로 통치해 주면 일본인은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2013. 10. 13.) 2013-10-13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