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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4)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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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4)

 

  사람은 사유하고 행동하거나 반응함에 있어 매우 복합적이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동물이다.

그때그때의 감정이나 환경여건에 따라 말과 행동의 반응이 전혀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

므로 개인적인 주관으로 다른 사람을 섣불리 평가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통상적인 사회적 규범과 관념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기억의 축적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 혹은 훌륭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사회적 통념과 자기와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유난히도 무더운 금년 여름 피서의 수단으로 나는 동네에 있는 기원을 자주 찾아갔다. 일정한

직장이 없는 나로서는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 바둑을 두는 재미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는데 안

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바둑실력은 8~9급 정도로 이제 막 바둑에 재미를 느끼는 그런 단

계인 것이다. 바둑의 상대로는 연령의 고하를 넘어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라면 누구든 함께하는

편이다. 나와 자주 바둑을 두는 사람 중에 중년을 훨씬 넘긴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노인과 형님 아우하면서 10년 가까이 바둑을 두어왔다고 한다. 기원에서 바둑 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적당한 긴장감과 집중을 위해 적은 돈으로 내기바둑을 주로 즐긴다. 따라서 바

둑을 두는 순간만큼은 어떤 잡념이나 근심걱정이 비집고 들 틈이 없는 것이다. 무슨 게임이든

잃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보니 그 두 사람 중 나이가 적은 사람이 다급할 때에

는 상대노인을 속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 간혹 눈에 드러난다. 문제는 상대방은 모르지만 옆에서

구경하는 삼자가 알아보면서 당사자가 없을 때 노인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면서 나쁜 사람이

상대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사실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그 사람을

비방하면서 성토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노인은 그 사람이 기원에 오지 않으면 섭

섭해 하고 전화로 간청하다시피해서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두 사람간의 관계에서 노인의 심정에 이해가 갔다. 10년간의 바둑지기에서 정이 든 노인의 외

로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난하는 그 사람도 내가 보기에는 일

부러 시간을 내서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좋은 벗이었던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을 상대로

자주 바둑을 두다보니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우연히 그 사람의 지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중국으로 무역을 했던 사람으로 건설업에도 종사한 사업가였다고 한다. 한때 자기 처가

신장이 나빠 혈액투석을 하면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해 기어코 자기 손으로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부산에서 강원도로 방방곡곡을 돌면서 신장기증자를 찾아 코피를

쏟아가며 밤낮으로 헤매다가 천우신조로 환자에 적합한 신장기증자를 만나 아내의 병을 고친

얘기와 옛날 군 생활을 같이하던 전우가 이름 모를 병으로 서울의 유명한 병원 몇 군데를 다녀

확실한 병명을 몰라 뼈와 가죽만 남긴 앙상한 모습으로 입원한 채 시들어가고 있는 처량한

모습을 보고 친면이 있는 서울의 모 대학 병원장에게 사정하여 병원장의 배려 하에 즉각 그 병

원에 입원시켜 병원장이 직접 환자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노력한 결과 비브리오균이 환자의 간

에 침투하여 온몸으로 확산 직전의 단계에 있는 것을 간신히 발견하여 치료함으로써 친구의

생명을 구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죽음 직전에서 생명을 구한 그 친구는 건강을 회복하고 사업

이 잘되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자 그 보답으로 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친구의 호의

에 감사하는 뜻으로 그에게 보내준 것을 되돌려준 얘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밤낮을 불문하고 미친 듯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신장기증자를 찾아 나선 그 정성과 친구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 사람의 인간성

을 바둑판에서 십년간 바둑지기인 상대방을 잠시 속인 잘못을 보고 질이 나쁜 몹쓸 사람이라고

낙인찍는 일이 얼마나 가볍고 섣부른 짓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누구든 죄 없는 자 돌로 징벌하라”는 성현의 말씀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면서 크고 작은 장, 단점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의 겉모습이나 또는 드러난 단편적

인 단점만을 보고 상대방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게 하는

그 사람의 모습에 자꾸만 모자란 나의 결점들이 겹쳐진다.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3.10.16)/청강 허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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