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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5)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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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5)

 

  그 무덥던 여름이 슬며시 비켜간 자리에 어느새 가을이 상큼 다가왔다. 무겁고 우중충하던 잿빛

하늘은 티 없이 푸른 하늘로 바뀌고 솜사탕 같은 흰 구름이 한가롭게 창공을 유영한다.

  인터넷상의 신문기사와 메일로 보내온 글들을 보면서 일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반쯤

기운 시간에 동부간선도로를 끼고 흐르는 중랑천으로 향했다. 중랑천으로 가는 길목의 아파트를

휘돌아 흐르는 무수천의 거울 같이 맑은 개울물 위로 은빛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져 내리고 흐르는

소리는 클래식처럼 은은하다.

  천변에 피어있는 쑥부쟁이와 야생들국화, 한들거리는 빨간 코스모스와 듬성듬성 펼쳐있는 억새

꽃의 하얀 물결이 가을정취를 더해준다. 중랑천의 쉼터에 도착하여 노변에서 파는 커피한잔을 들

고 평편한 바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중랑천 다리 밑의 나지막한 시멘트 보(洑)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하얀 물보라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왜가리 두 마리가 보(洑)위에서 부리를 45도로 늘

어뜨리고 물보라가 일어나는 방향을 오랫동안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화살을 장전한 활줄을 힘껏

당긴 궁수가 과녁을 겨냥하듯이 석고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더니 갑자기 몸집이 큰 왜가리

가 물길에 부리를 쪼는가 싶더니 주둥이에 은빛 물고기가 펄떡이는 것이 보였다. 몸집이 큰 왜가

리는 이런 행동을 반복하면서 물고기를 곧 잘 낚아채었다. 몸집이 작은 왜가리는 날개를 흔들며

물길에 부리를 쪼아보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는지 부산스럽게 물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공연히

부리로 물만 쪼아대는 것이 노련한 낚시꾼과 서투른 낚시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몸집이 큰

어미 왜가리의 고기를 잡는 테크닉은 지난세월동안 겪은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하여 지니게

된 노하우인지도 모른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패의 시련들을 겪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이 거쳐 가는 일련의 성장과정인 것이다. 인간의 삶도 여기에

서 예외일 수는 없다.

  요즘처럼 생존경쟁이 심한 세태에서는 더욱 많은 시행착오와 도전이 요구된다. 끊임없는 시도

와 노력으로 남보다 나은 자기만의 능력을 키우고 기회가 오면 때맞춰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서 몸집 큰 왜가리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인 것이다. 몸집이 작은 새끼 왜가리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

고 서투른 몸짓으로 부리만 쪼아대다가 물고기를 놓치고 마는 모습이 오늘날 일부 젊은이들의

성급한 생활모습과 닮은 것 같았다. 아니 젊은이들의 일이라기보다 당장 나의 일상의 모습과도

같다는 느낌이었다.

  빈 커피 잔을 들고 주위에 있는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고 쉼터에 마련된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풀고는 발길을 돌려 천천히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도중 길가의 아파트 앞

공터에서 30여명의 젊은 주부들이 강사의 구호와 몸동작에 맞춰 신나게 라인댄스를 추고 있었

다. 휴대용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신명나게 몸을 흔들어대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몹시 흥겹게 했다. 가정주부들이 저녁 일을 마치고 밤 9시부터 2시간

가량 정기적으로 연습하는 것으로 다이어트와 스트레스해소에 적당한 레크레이션 같았다. 주위

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흥겹게 춤추는 여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웠다.

  우리나라에 댄스스포츠가 들어 온 것은 구한말 고종황제 때 서울주재 러시아공사에 의해서

다고 전해지며, 1920년대 일본과 소련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종로의 횡성기독청년회(YMCA)

에서 시범을 보인 것이 그 시초였다고 한다. 현대의 복잡하고 쉴 틈 없이 바쁜 생활전선에서 이

한 역동적인 춤들이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삶의 쉼표가 되리라.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3.10.16)/청강 허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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