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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레]조계종 주지급 승려들 밤샘 술판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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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식 수행’ 대중화 위한 시설
승가대 동기 10여명 모여 고성방가
일반인 이용자들에겐 금주 권유

조계종의 주지급 승려 10여명이 지난달 28일 밤 10시께부터 다음날 아침 7시께까지 충남의 한 불교 연수원에서 밤새 술판을 벌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조계종의 주지급 승려들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돼 있는 불교 연수원에서 밤새 ‘술판’을 벌였다.

승가대 동기들로 알려진 10여명의 승려들은 지난달 28일 밤 충남의 한 불교 연수원 레크리에이션룸에서 다음날 아침 7시께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셨다. 조계종 총무원이 2009년 ‘불교식 수행’의 대중화를 목표로 설립한 이 연수원은 불교 관련 기관 외에도 정부·기업·학교 등 100여개 기관들이 연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승려들의 노랫소리는 일반인 이용자들이 묵고 있는 인근 숙소에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이 연수원에선 일반인 이용자들에게는 구내에서 술을 마시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다.

승려들이 술을 마신 레크리에이션룸은 30인석 규모로 노래방 시설이 갖춰져 있다. 술자리가 끝난 레크리에이션룸에는 승려들이 마시고 난 1박스 분량의 소주병과 3박스 분량의 맥주캔, 먹다 남은 문어 숙회와 과일·오징어포 따위의 안주가 남아 있었다. 불교에선 불교도이면 모두가 지켜야 하는 기본 생활 규범인 ‘오계’에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승려들 중에는 3선의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도 있었다. 아산의 한 사찰 주지인 이 승려는 지난 10월 실시된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재선에 나선 자승 스님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승려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20년 만에 도반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종단 소유 시설이라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계종의 한 승려는 “승려로서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했다. 특히 외부 사람들에게는 금주를 권하면서 자기들은 마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종단에서 철저히 진상을 조사한 뒤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의 관계자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규남 노현웅 기자 3strings@hani.co.kr

  • 허태기 최근 승려들이 카드 도박을 하면서 술, 담배를 하는 동영상이 여과 없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처음 자료를 접했을 땐 '승려를 사칭한 속세 사람 아닐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승려들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고위급 승려였습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 중 한 명은 조계종에서 매우 중추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서울 유명 사찰의 주지였습니다. 게다가 이 주지승은 불교계에선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중앙종회 회원입니다. 중앙종회 회원의 경우, 호법부(검찰에 해당)에서 범죄사실을 발견하더라도 종회의 동의가 없으면 면책되는 최고위직입니다. 도박판에 연루돼 검찰에 고발당한 8명은 주지승이 소속된 사찰의 부주지, 지방 사찰의 방장 등 국내 불자들의 모범이 돼야 할 승려들이었습니다. 외제차를 몰고 고기를 먹는 승려도 일부 있다는 소문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이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내 불교계의 깊숙한 치부를 드러낸 이 동영상은 어떻게 공개됐을까요.

    이 동영상을 검찰에 제출한 성호스님 역시 누가 찍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고발 전날인 8일, 자신이 머물고 있는 절 불당에 누군가 놓고 갔다는 겁니다. 몰래카메라 촬영은 그 자체로 범죄이고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밀에 부치려 하는 건 당연할 겁니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치밀한 과정으로 볼 때, 누가 찍었든 한 사람이 혼자 벌인 일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메라는 도박판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위치에 설치됐습니다. 13시간 동안 끊기지도, 흔들리지도 않고 촬영이 됐습니다. 누군가 승려들 이름으로 예약된 방을 알아내 잠입한 다음, 미리 카메라를 설치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하필 그 자리에서 도박판이 벌어질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니, 그 전에 이 승려들이 그날 도박을 벌일 거라는 걸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요.

    이 승려들은 백양사의 방장이었던 수산 스님의 49재에 참석하러 전국에서 전남 장성에 왔습니다. 49재 전날 오랜만에 만나 카드게임을 하자고 사전 모의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날 함께 도박하는 건 미리 말을 맞출 필요도 없는 뿌리 깊은 관행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이날 도박판이 벌어진다는 정보를 입수한 누군가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을 겁니다. 예약된 방을 미리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반드시 도박판이 벌어질 그 장소에, 그 위치에 설치돼야 하고, 제 시간에 작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조력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카메라 위치엔 별다른 가구가 없고 벽에 창문만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그날 그 장소에 있던 승려들 가운데 누군가 자기 가방에 몰래카메라를 달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번 사건을 누가 꾸민 걸까요. 지난해부터 고불총림인 백양사에서 주지, 방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갈등이 배경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도박판에 연루된 승려들은 모두, 두 주지 후보 중 한 명과 더 가까운 승려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계에선 조계종 현 지도부를 겨냥한 공격이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발인인 성호 스님은 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측과 계속 갈등을 빚던 인물입니다. 2009년부터 총무원장의 승적을 문제 삼으면서 당선무효 소송 등을 벌였고, 여러 차례 갈등을 빚던 끝에 2010년 초 결국 승적을 박탈당했습니다. 따라서 백양사의 한 세력과 현 총무원장 반대파가 함께 일을 꾸몄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등장하던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와 비교하면 많이 개혁됐다고들 하지만, 지금도 불교계 내부에선 권력암투가 여전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번 몰래카메라가 어떤 의도에서 촬영됐든, 실제 고위 승려들이 도박판을 벌였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신도들은 이미 일부 고위 승려들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예전부터 있어왔다고 전했습니다. 이미 높은 곳에서부터 깊이 썩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러나 '억대 도박판'에 대한 조계종 측의 해명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관계자는 우선 "제보한 스님이 승직을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이어 "억대 도박판은 너무 과장됐다"면서 "한 번 판돈이 억대가 아니라, 밤새 오간 전체 판돈의 합이 억대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위 승려들의 평소 씀씀이가 얼마나 되기에 이런 식의 해명을 하는 걸까요? 어차피 한 번 건 돈이 억대일 거라고는 애초 생각지도 않았지만, 한 번 판돈이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이라고 해서 판돈이 적은 건가요? 승려들이 시주 받은 돈으로 술판, 도박판을 벌였다는 본질 자체가 변하는 걸까요?

    요새 주변에선 조계종 사태와 통합진보당 파행을 한데 비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진보'와 '종교', 서로 다른 두 단어에서 우리는 공통적으로 기존의 부패한 권력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우리에게 "그들도 다를 바 없었다"는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구정물 같은 속세에서 힘없는 서민들이 닭똥만큼의 위안과 희망이라도 구할 틈은 좀 남겨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문준모 기자moonje@sbs.co.kr
    2013-12-03 10:49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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