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닮긴 삶(6)
허태기
view : 3139
거울 속에 닮긴 삶(6)
1년을 엮어놓은 12장의 달력이 달랑 한 장만 남았다. 오 헨리(William Sydney Porter, O.
Henry 1862~1910 )의 ‘마지막 잎새’처럼 벽에 걸린 달력 한 장이 한해의 마감을 알린다.
올해의 봄꽃은 여느 해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게 피더니 겨울은 일주일 빨리 온다고 한다. 올
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여름뿐만 아니라 가을에도 비교적 비가 자주 내린 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옆을 따라 흐르는 무수천의 개울이 다른 해 같으면 거대한 동물의 뼈처럼
허연 바닥을 드러냈을 때이지만 요즘도 개울물이 적당한 수량을 유지하면서 찰랑찰랑 흘러
내리는 것이 보는 이의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언젠가 이런 새벽에 지나다가 개울을 바라보니
안개 같은 수증기가 개울을 따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무척 환상적이었다.
계절은 덧없는 세월 따라 무상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또 한해가 저물어 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 일년간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밀려 다니면서 보낸 것 같다. 자기 주관대로 세상을
살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주어진 여건에 밀려다니면서 보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인생
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삶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이러한 화두들이 사색의 계절을 훑
으면서 한해의 끝자락에 고인다.
얼마 전 지인의 부탁으로 그의 차에 동승하여 서울 근교에 있는 교도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
다. 이날 법회를 담당한 스님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못 오시게 되었으니 나에게 재소자를 위해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전에 연락을 받았기에 어떤 내용을 얘기할 것인가
를 한동안 망설이다가 사람이면 누구나 갈망하는 행복에 대한 얘기를 주제로 택하였다. 200
여명의 재소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통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정작 나는 내 얘기를 진지하
게 들어주는 그 사람들로부터 순간의 행복을 느낀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의 첩경으로 행운이 자기에게 도래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바라는 행운은 다분
히 우연적이고 기복적이면서 투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거액의 복권당첨이나 빠징고의 행
운이 일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행운의 확률을 기대하다가는 평생을 불행 속에서 살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설사 그런 행운을 누린 사람도 대개가 좋지 못한 종말을
맞이한다고 한다. 땀 흘리지 않고 거둔 열매는 금방 시들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흔히 네 잎의 크로버를 행운에 비유하여 네 잎의 크로버를 찾으면 행운이 자신에
게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좋아한다. 세 잎의 크로버는 근면·정직·친절을 의미
한다. 어떤 사람은 희망·믿음·사랑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러한 말을 만든 사람은 대단히
멋있고 낭만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한 삶으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면서 살다보면 행운은 절로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것을 네 잎의 크로버에 비유한
것일 게다. 또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가
성취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의 긍정적인 사고와 상대방에게 진실과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에서
언제나 행운이 함께한다는 상징적 의미인 것이다. 행운의 네 잎의 크로버를 찾기 위하여 세 잎
의 크로버를 밝고 다니듯이 우리가 막연한 행운을 위하여 근면과 정직 그리고 친절을 외면하면
서 오직 행운만을 추구한다면 결국은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만족하여 부족하거나 마음에 불만이 없는 상태"
라고 표현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속에 불만이 있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한 행복은
없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많은 것을 지녀도 마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행복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필자인 나는 행복에는 『상대적인 행복』
과『절대적인 행복』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상대적인 행복』은 쟁취
하는 행복, 비교를 통해 느끼는 행복으로 흔히 말하는 돈·명예·권력·건강 등을 들 수가 있다.
돈은 많을수록 편리하고 명예나 권력은 클수록 좋으며 건강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허지만 이
러한 것들은 행복의 조건이 될 수는 있으나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특히 권력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스스로를 해하기도 하고 무상하여 허망하다. 통계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20년
전보다 2배 이상 건강하고 풍족하게 살지만 결코 행복해졌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한다. 모 재벌
의 딸이 스스로 생명을 끊고 일류 건설회사 사장이 투신자살 한 것은 돈이 없거나 건강이 나빠
서가 아니고, 전직 대법관이 투신자살한 것은 명예가 없어서도 아니다. 이들의 자살은 모두 마
음에 입은 상처 때문이었다.
『절대적인 행복』은 발견을 통한 깨닫는 행복, 나눔을 통하여 느끼는 행복으로 한 송이의
꽃, 한 방울의 이슬에서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발견하고 찬탄할 줄 아는 마음으로 작은 것에서
만족을 찾을 줄 아는 마음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씨나 우정, 사랑, 신앙적 믿음 등은 그 누
구도 빼앗아 갈 수 없고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행복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다.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낙관적이고 매사를 즐겁게 바라보는 긍정의 힘을 지녀야
만 한다. 그러한 힘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너와 나의 근원이 한 뿌리임을 자각하고
나눔을 통한 공동의 행복추구가 스스로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것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들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들이다. 가슴으로 행복을 느낄
때 근본 삶이 바뀌고 삶 자체가 기쁨이 되며 경이와 신비가 되고 축복이 되어 궁극적인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한 때 세계적인 재벌가였던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 )'의 회고록을 통해
서나 맹 농아자로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여 세계최초로 우등으로 졸업하고, 맹인들을 위한 헌
신적인 복지사업으로 당시 "뉴욕헤럴드트리뷴'지가 선정한 위대한 사람에 뽑힌 '빛의 천사'라
고 불렸던 '헬렌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가 꿈꾼 행복도 이처럼 깨달음을 통
한 행복, 나눔을 통한 행복이었던 것이다.
행복은 흘러가버린 과거나 신기루 같은 미래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지금 당장 행복할 줄
알아야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오늘 행복할 줄 모르면 내일도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지
금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매순간순간 행복할 줄 알아
야 하는 것이다. 행복은 내일의 문제가 아닌 오늘의 문제이며 순간의 일로 우리의 삶에서 행복
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이 순간뿐인 것이다.
한해를 보내면서 나는 과연 지난 1년 동안 제대로 된 삶을 살아왔는가를 스스로 점검하여 본다.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3.12.11)/청강 허태기 -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