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큰스님은 어떤 분?
강길형
view : 4792
사찰요리의 대가이신 대안스님께서 우리가 보통 음미하는 맛은 5가지(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이나, 부처님께서는 경전에 무(無)맛을 더해서 6가지 맛으로 표현하셨다 한다.
무(無)맛은 전혀 간이 되지 않고 싱거우며 재료 자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맛이라고.
지난 대중공양으로 기기암에 갔을 때 월암 선원장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불법에 가장 어울리는 차라 하시면서 무차(무를 썰어 말려 덖은 것을 우려낸 차)를 우리에게 주셨다.
채소의 한 종류인 무이지만 그 무가 무(無)로 의미를 부여하셨겠지?
다른 도반들은 모르지만 그 무차를 마시는 동안 잠시라도 無(空, 定)의 순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 무차가 참 맛있네! 어떻게 만들었지?”하는 생각을 오히려 더 채워 넣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이렇듯 부처님이나 스님들은 어떠한 방편으로도 우리 중생들을 깨우쳐 주려 하시니 그 은혜를 어찌 갚을까!
이번 시간에는 ‘정통선의 향훈’ 마지막 시간으로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여러 신문에 실린
청화큰스님의 대담내용입니다.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공통된 것 중심으로 간추려 봅니다.
1. 청화큰스님은 어떤 분?
전남 무안군 운남면에서 태어나신 청화 스님의 속명은 강호성.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본에 잠시 유학한 뒤 민족자각의식을 깨우치기 위해선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고등공립학교(현 망운중학교)를 세워 가르쳤다.
24살 때 보다 큰 진리공부를 위해 속세를 등지고 장성 백양사 운문암을 찾아 송만암 대종사의 상좌인 금타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문에 드셨다.
스승인 금타화상은 하루 한 끼를 공양하고 짚신을 손수 삼으시는 청빈이 몸에 밴 분이시며,
현대 물리학에도 조예가 깊으셨고 한국불교의 정통인 통불교를 주창해왔는데 이런 수행법과 사상은 청화스님에게 큰 영향을 주셨다.
청화스님도 스승의 참뜻에 따라 47년간 하루 한 끼 공양과(어떤 때는 석 달 열흘 동안 물만 드신 경우도 있음 - “음식은 사람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시켜주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하심) 참선 수행을 위한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평생의 신조로 삼으시고 행하셨다.
청화스님은 40여 년간 전국 각지의 사찰과 암자의 토굴에서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수도 정진하셨으며 1985년 탁발수행과 떠돌이 선방좌선을 끝내고 9산선문의 하나였던 태안사(전남 곡성)에서 20여명의 도반과 함께 3년 동안 묵언(黙言) 수행 정진하시면서 퇴락한 태안사를 중흥시키셨다.
그 뒤 성륜사, 광륜사 뿐 아니라 전국 각지를 돌면서 중생 교화에 애쓰시다 2003년에 열반에 드셨다.
2. ‘부처님 오신 날’ 참 의미는?
부처님이 오신 참 뜻은 무명(無明)에 의한 미혹된 삶을 버리고 정견(正見)에 입각한 바른 삶을 깨우치려는 것이다.(轉迷開悟-2014년의 사자성어이기도 함) 그런 바른 삶이 바로 ‘무아(無我)와 무소유(無所有)’의 삶인데 이를 제대로 인식하면 뜨거운 숯불 위에서 눈송이가 녹듯 모든 일이 풀린다.(紅爐點雪).
내가 없으므로(無我) 남이 있을 수도 없으며 서로를 시비하는 마음도 있을 수 없고,
또 본래 나와 남이 없으니 천지와 더불어 하나의 생명인 부처님(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석가나 예수는 생존 시에 거지같은 무소유(無所有)의 생활을 했으니, 우리 수행자들도 물질만능의 세상 속에서 인생본래의 모습인 참나(眞我, 無我)를 잃고 방황하지 말고 청빈하게 생활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야한다.
3.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견은 바른 인생,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과 같은 뜻이다. 무명(無明)으로 인한 진리에 맞지 않는 업으로 우리가 고통을 받으니까 행복을 위해서는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거기에 따른 바른 행동도 실천해야 한다.
즉 중도실상의 안목을 가지고 바른 생활을 해야만 바른 깨달음이 생긴다.
선(禪)이란 우리 마음을 중도실상인 생명의 본질에 머물게 해 산란하게 하지 않는 수행법으로
이런 수행을 계속하다보면 필경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생명의 근본목적을 이룬다.
4. 염불선이란?
부처님 경 가운데 2백부 이상에서 염불을 말씀하셨다.
본디 자성(自性)이면서도 우주의 본체인 부처님의 대명사가 바로 아미타불이며(보리방편문 288자는 아미타불의 참뜻을 요약한 것임), 거기에 귀의한다는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것만으로 업장이 녹는다.
염불선은 ‘내 마음이 부처(아미타불)고, 천지우주 역시 부처(아미타불)다.’ 라는 것을 믿고 마치 어미닭이 계란을 품듯 염념상속으로 공부하는 것을 말하며 지(知), 정(情), 의(意) 모두를 갖춘 것으로 결코 근기가 낮은 중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5. 청화스님의 통불교, 통종교 지향은?
부처님 가르침 자체가 원통 무애한 것을 종합지향하는 것으로 중도실상에 입각해서 모든 가르침은 내 법만이 옳다는 법집에서 벗어나 회통되어야 한다고 본다.
청화스님은 하나님이든 알라신이든 부처님이든 관계없이 진리의 알맹이만 통합한다면 불교인들이 갈망하는 통불교뿐 아니라 타종교와의 벽도 무너뜨려 통종교까지도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분이셨다.
그 하나의 예가 미주 한국불교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건너가 미주 금강 선원을 개설하고 안거 수행을 하시면서 포교활동을 하셨고, 또 종교대학 설립의 꿈도 가지셨다.
며칠 전에 딸아이 일로 잠시 한국을 떠난 적이 있는데,
내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비행기가 몹시 불안정하여 ‘드디어 죽는구나.’ 하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기내의 단 한 사람도 술렁거리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고,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도 짧은 시간이였지만 수많은 생각들로 자신을 정리하는 것처럼 오히려 더 고요했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
두 가지 생각이 났다.
하나는 우리 딸이 자기 때문에 엄마가 사고를 당했다는 죄책감이 들면 어떡하지? 하는 것 하고,
또 하나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마음공부를 다하지 못했구나 하는 후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은 ‘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담담하고 침착하게 ‘아미타불’ 염불만 하고 있는 내자신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불보살님 보살핌으로 참담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거야!’ 하는 믿음과
죽음은 끝나는 대상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뿐이라는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부처님 말씀들이 내 잠재의식 속에서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가랑비에 옷 젖 듯 조금씩이라도 끊임없이 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힘이 생겼나 보다.
어느 듯 시간이 흘러 그 날의 후회를 잊고 열심히 수행을 못하고 있지만 그 후회를 자꾸 더듬어 기억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 이유이다.
감사합니다.아미타불! 2014-01-17 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