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닮긴 삶(8)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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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8)
얼마 전에 TV에서 1994년 미국에서 가장 범죄가 성행했던 뉴욕을 가장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시킨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William Louis Giuliani, 1944년 출생)시장에 대한
얘기를 다룬 프로를 보았다. 그는 무질서와 범죄가 횡행하는 뉴욕을 보다 안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rory)’이란 책을 읽고 공감을 얻어 낙서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줄리아니 시장 재임당시만 해도 뉴욕은 마천루가 즐비한 화려한 도시였지만 지하철로 가
는 통로의 지하세계에는 온갖 종류의 낙서와 쓰레기 범벅에다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시장
은 범죄를 없애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지하철 곳곳에 방치된 낙서를 깨끗이 지우는 한편
쓰레기 무단투기와 무임승차 등 기초질서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들에겐
과중한 벌금을 부과했다. 시행 초기에는 시민들의 불만이 높았지만 2년 후, 범죄가 50%
이상 줄어들었고 시장의 임기가 만료될 쯤이 되자 75% 가량 범죄가 줄어들었다. 이에 줄
리아니는 뉴욕시장에 재선된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
(James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Kelling)이 1982년 3월에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
(Fixing Broken Windows: Restoring Order and Reducing Crime in Our Communities)
이라는 글을 Atlanta紙에 처음으로 소개된 글로서 사회의 무질서와 범죄에 관한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
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사회적인 큰 범죄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1969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슬럼가의 한 골목에 차량 두 대를 세워둔다.
한 대는 보닛만 열어 놓고,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고 유리창을 조금 깼다. 1주일이 지난
후에, 보닛을 열어둔 차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유리창이 깨진 차는 주요 부품이 사라지고
쓰레기가 쌓여 폐차처럼 됐다. 이 실험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의 범죄학 이론의 실험에 의하면 도시 변두리에 있는 한 주택을
유리창이 한 장 깨진 채로 방치한 결과 며칠 후에 행인들이 버려진 집으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렸다고 한다. 깨진 유리창은 사소한 것이지만 망가진
채로 그냥 방치하면 더 큰 문제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의
이론의 요지는 사고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이를 소홀히 하거나 대응이 부적절
할 경우,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주게 되고, 문제가 커진 후 대처하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
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이론을 근거로 줄리아니 시장은 낙서와의 전쟁
을 선포하고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온상의 여지를 없애버린 결과 뉴욕시를 범죄의 도시라
는 불명예로부터 벗어나게 하였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체계화한 논리적인 학문적 이론이지만
상식적인 사실관계로서 이러한 일들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고 있다. 환경이
좋으면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환경이 나쁘면 나쁜 환경에 쉽게 휩쓸려버리고
만다. 조그마한 고장을 그대로 두면 그 물건을 망가지듯이 사소한 잘못이라도 고치지 않고
버려두면 결국 더 큰 잘못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줄리아니 시장은 이 이론에 착안하여 보잘
것없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예방조치를 통해 범죄의 대부분을 예방함으로써 재선에 성
공했다.
오늘날 각종 범죄와 파업행위로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은 한국사회의 고질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는데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이 기업경영자나 정치지도자들
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4.2.19)/청강 허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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