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닮긴 삶(12) -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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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12)
푸른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신록의 계절에 접어들었다. 절기상으로 보아 아직은
봄이지만 벌써 여름더위가 찾아왔다. 지난 4월 16일 어린학생들을 포함한 300여명의
생명이 희생된 세월호의 비극이 시작 된지 달포가 지났지만 아직도 사태수습이 마무리
되지 않아 슬픔과 어둠의 그림자가 여전히 나라를 뒤덮고 있다. 몇몇 개인의 무능과
이기주의가 나라를 온통 절망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승객의 안전
을 책임진 배의 선장과 이를 관리하는 선주의 배금주의와 상식이하의 무책임한 행동이
낳은 결과가 너무나 참담했기 때문이다.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안전망에도 여러 가지
허점이 드러났다. 세월이 지나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이에 대처
하는 국가의 대비태세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
망이 모두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것 같다. 사건발단의 근본은 모두가 법과 규정을 제대
로 지키키지 않은 데서 기인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법보다 감정이나 정서를 앞세운다. 여기
에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선동과 상업주의에 젖은 수준미달의
언론들이 단단히 한 몫 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했으면 법위에 떼법이 있다고 하겠는가.
사건의 전말을 냉정하게 보지 않고 그때그때의 감정이 사태의 추이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기인한 나의 불편과 고통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로
인해 타인에게 기치는 불편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위(국가)로부터의 개혁보
다 아래(개인)로부터의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
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달라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는 케네디대통령의 말이 새삼스럽다. 우리는 어느새 국가보다는 개인의 이
익을 우선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강력한 국가가 없는 개인은
보호받을 수 없으며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국가는 개
인을 보호하기위해 존재하며 개인은 국가를 보위하는 의무를 지니는 것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6일 현충일을 전후하여 대통령과 정부요인을 위시하
여 많은 사람들이 국립묘지를 찾는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수십
만의 젊은 영령들을 국민을 대표하여 위무하고 기리기위해서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유력일간지에 난 기사가
왠지 머리에서 맴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재난대처에 실망한 서울의 어느 일
류대학 학생들이 이 나라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 땅을 떠
나겠다는 여론조사결과였다. 이유인즉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나라
에 생명을 걸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과 의무에 따라 나라를 위해 기꺼이 싸우
겠다는 학생은 극히 소수였다.
이것이 오늘날 지성인을 자처하는 일부 한국대학생들의 의식구조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의식이 생명이 위태로운 위기상황에서 회피하기위한 가장 합리적인 자기정당화
의 구실인지도 모른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투중대장으로서 중대원을 이끌고 작전하
면서 느낀 점은 가장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병사는 시골출신의 농사꾼이었다. 지식이
많아 잘났거나 태권도 고단자로 평소에 큰소리치던 운동 잘하는 친구는 막상 총성이
울리기 시작하자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해하였다. 심지어는 공포증을 이기지 못해 전장
에서 이탈하여 도망가는 자도 있었다. 이들은 공동의 안전보다는 자신의 생명이 더 소
중했던 것이다. 나의 군 동기생중 10명이 월남전에 소대장요원으로 참전하였다가 전
사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평시에 현역으로 임무수행 중 순직한 동기생 4명
도 같은 곳에 누워있다. 매년 6월이면 동기생들과 같이 이들의 묘비를 찾아 조의를 표
하고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1930년대 스페인내전을 소설화한 헤밍웨이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43년에 영화화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명작으로 유명하다. 영화 제목은 17세
기 영국의 목사이자 시인인 존던(John Donne, 1572~1636)의 시(For Whom the Bell
Tolls)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영화는 정의와 자유가 보장된 세계는 훌륭한 것이며 그것
을 위해서는 싸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수 출신인 주인공 로버트 조던
(게리 쿠퍼 분)은 철교폭파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게 된다. 적군이
추격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다리를 부상당한 조단은 동료로 하여금 자신만 남겨두고
사랑하는 연인 마리아(잉그리트 버그만 분)를 데리고 떠나라고 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남겨놓고 가지 않으려고 울부짖는 마리아에게 “당신이 가면 나도 가는 거야, 당신이 있
는 곳엔 어디에나 내가 있어”라며 달래어 보내고는 홀로남아 다가오는 적을 향해 기관
총을 든다.
“그르므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라는 존던의 시구처럼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누군가가
죽었음을 알리며 울려 퍼지는 ‘조종(弔鐘)’과 같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공동선을 구호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개인
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수많은 영령들 또한 개인의 존재 의미보다는 자유국가의 존재
가치를 위한 낱낱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무엇이 바른 양심이며 삶의 가치관인가를 되뇌며 잊혀져가는 호국영령들을 위해
시(詩)를 올린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청강 허태기
민족의 얼이 서린 곳
호국의 영령들이 안식하고 있는
구국의 쉼터
6월의 햇살을 끌어 당기는 진혼곡이
가슴을 뚫는다.
죽음의 벼랑에서
조국수호를 외치던 절규는
소리 없는 메아리로
겨레의 가슴에 한 송이
무궁화 꽃 피우고
세월의 침묵 속에
숨결조차 멈춘 푸른 얼들이
차디찬 돌비석, 한조각 위패로
망각의 넋이 되어
검은 리본으로 흐느낀다.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4.6.)/청강 허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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