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쉽진 않습니다. 현실을 불국토로 만드는 일 말입니다. 불국사의 대웅전 앞뜰로 갔습니다. 탑이 둘 있습니다. 석가탑과 다보탑. 묘하더군요. 하나는 무척 단조롭고, 하나는 아주 화려합니다. 왜 저런 탑을 불국사 대웅전 뜰에다 세웠을까요. 붓다를 모신 대웅전은 절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데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풍경2 : 인도의 영축산에 갔습니다. 붓다가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이 빙긋이 웃었다는 염화미소의 장소입니다. 붓다는 거기서 ‘묘법연화경(법화경)’을 설했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땅을 뚫고 탑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붓다를 석가여래, 탑을 다보여래라 부릅니다. 그게 석가탑과 다보탑에 얽힌 불교적 전승입니다.
석가탑과 다보탑. 그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불국사 대웅전 앞뜰은 그 자체가 화두입니다. 설화에 힌트가 있습니다. 석가탑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사녀는 석가탑이 완성되면 불국사 근처의 못에 탑 그림자가 비칠 거란 말을 듣고 하염없이 남편 아사달의 탑 만드는 작업이 끝나길 기다립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림자가 비치지 않자 아사녀는 결국 못에 몸을 던지고 맙니다. 그래서 석가탑은 일명 ‘무영탑(無影塔)’이라 불립니다. 그림자가 없는 탑이란 뜻입니다.
눈치채셨나요? 석가탑은 ‘공(空)’을 의미합니다. 공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건 붓다의 자리, 깨달음의 자리입니다. 그리스도교 식으로 표현하면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거기서 세상 만물이 창조됩니다.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생기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생깁니다. 그처럼 공(空)의 자리에서 색(色)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공(空)은 그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자리가 아닙니다. 세상 만물이 창조되는 바탕 없는 바탕입니다. 그래서 붓다가 설법하자 탑이 솟는 겁니다. 공의 자리에서 색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불국사에만 탑이 있는 게 아니군요. 우리의 일상에서도 수시로 탑이 솟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바탕에서 생각이 툭 나올 때 탑이 솟는 겁니다. 내가 던지는 말, 내가 하는 행동, 창밖의 비, 부는 바람, 피어나는 꽃도 모두 솟아나는 탑입니다. 그런 탑 하나하나가 귀한 보물입니다. 그래서 ‘다보(多寶)’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보탑이고, 이 우주가 거대한 탑림(塔林·탑의 숲)입니다.
불국사 대웅전의 붓다가 설합니다. “석가탑(空)과 다보탑(色), 둘을 동시에 보라. 거기에 불국토가 있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봅니다. 온통 다보탑 천지입니다. 그런데 석가탑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림자도 보이질 않습니다. 대체 석가탑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걸 찾아야 불국토가 된다는데.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다보탑 안에 석가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의 일상에선 수시로 짜증이 올라옵니다. 그 짜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짜증의 속성이 공(空)하니까요. 짜증(色)이 다보탑입니다. 공(空)함이 석가탑입니다. 둘을 동시에 보면 짜증이 녹고 불국토가 됩니다. 그러니 다보탑 안에 석가탑이 있고, 석가탑 안에 다보탑이 있습니다. 그 비밀을 알 때 우리는 불국사가 됩니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