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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13)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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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13)

 

 

<공자와 소정묘>

 

  농염한 여인의 입술처럼 붉은 정열을 뿜어대던 장미꽃이 지고 능소화의 절개가

담벼락을 장식하는 계절이다. 짙은 7월의 녹음이 심장까지 푸르게 물들이는 것 같다.

따가운 태양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무디게 하고 잿빛 안개로 뒤덮힌 하늘은 마음을

울하게 한다. 무더운 계절 팍팍한 일상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터에 정가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가 더욱 짜증나게 한다.

  모국회의원이 뇌물로 받은 돈 가방을 그의 운전수가 경찰서에 신고하는 일이 생기

는가 하면 어떤 시의원이 돈 문제로 그를 후원하던 사람을 살인 교사한 사건이 뉴스

화면을 장식한다. 국민을 편하게 해야 할 정치인이 오히려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것

다. 옛날 탐관오리의 횡포가 요즘은 정치인들의 횡포로 바뀐 것 같다.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지 않고 경멸하는 것이 오늘날의 정치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런 정치인이 되고자 목을 매는 것은 부와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혼란해지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인심(人心)이 수심(獸心)을 바뀌는 현상이

곳곳에 발생한다.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는 그러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여러나라를 순례

하며 덕치(德治)로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왕들에게 설득하였다. 이러한 공자가 후일

재상이 되어 '소정묘(少正卯)'라는 당시 인기있는 고위층 인사(정치인)을 죽인 일화는

덕치(德治)에서 벗어나는 드문 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아울러 사실

진위여부가 학자들 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자(孔子 B.C. 551~479)는 춘추시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에 자리잡은 노(魯)

나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은 신분이 무관이었고 어머니는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인 16세 안징재(顔徴在)와의 사이에서 공자를 낳았다고 전해

다. 공자 나이 3세 때 아버지가 타계하고, 17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세에 결혼하여 20세에 아들 이(鯉)를 보았다. 공자 나이 35세 되던 해, 당시 노나라

임금이 국내사정으로 이웃 제()나라로 달아나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공자

는 제나라로 가서 제나라 임금을 만나게 된다. 

  공자의 인물됨을 보고 그를 등용하려고 생각한 제나라 임금은 공자에게 약간의 토지

를 주어 정착시키려고 하였으나 제나라의 재상 안영(晏瓔)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

했다. 43살 되던 해, 노나라에서는 계씨(桂氏)일파가 권력을 휘두르고 양호(陽虎)가 난

을 일으켜 나라 안이 어지러웠다. 당시 공자는 관직에 있었지만, 그 상황에 염증을 느껴

낙향하여 교육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 후 공자는 노나라 한 고을의 수장을 거쳐 그동안

갈고 닦은 인격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참신한 정치를 하게 된다.

  52세 되던 해, 약소국 노나라 임금이 강대국 제나라 임금과 회담을 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공자는 노나라 임금을 수행하여 회담장에 나가 옳고 그름의 사리를 따져 빼았

겼던 조국의 토지를 반환시키는 뛰어난 외교력을 선보이게 된다. 마침내 그의 능력이

조정에 인정받아 56세 때에는 지금의 건설부 장관(司空)을 법무부 장관(大司寇)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때가 공자에게는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대사구가 된지 7일만에 나라의 정치를 어지럽히는 대부大夫(고급관리)소정묘

를 처단한 사형에 처한다. 소정묘를 처단한 공자는 신념과 냉정한 판단으로 대사구의

직책을 수행하여 3개월 만에 노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정치력을 발휘하게 되고

노나라의 정국은 안정을 이루게 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지만 당시 명망이 높은 소정묘를 처형하자 이 같은 공자의 조치가

가혹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이에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스승께서 정사를 맡으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를 가장 먼저 죽였습니다. 이것은 스승님의 잘못이 아닙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천하에는 도적보다 더 위험한 다섯가지가 있다.

  첫째로 아는 것이 많으나 마음이 음험한자. 둘째, 행실이 좋지 않으면서 고집만 센자.

셋째, 분명히 거짓말을 하면서 변론을 잘 하는 자. 넷째, 오로지 추한 것만 기억하고

널리 기록하는 자. 다섯째, 그릇된 일에 찬동하고 그곳에 분칠하는 자." 사람으로서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만 해당되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인데 소정묘는 이 다섯 가지

면모를 다 가지고 있었다. 거처하는 곳에서는 무리를 모아 당파를 이루고 사람들 앞에

서 잘난 체 한다. 또 패거리의 힘을 믿고 옳은 일인데도 사사건건 반대하고 제멋대로

처신했다. 이런 자는 사람 중에서도 간웅이니 주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탕왕은 윤해를 주살했고 문왕은 반지를 주살했고 주공은 관숙을 주살했고

태공은 화사를 주살했고 관중은 부리을을 주살했고 자산은 등석사부를 주살했다. 

이 일곱은 모두 세대는 달라도 같은 마음으로 주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했다. 덕(德)과 인치(仁治)를 앞세운 공자도 정치를 함에 있어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

는 이처럼 냉정했던 것이다.

  2500여 년 전 이러한 공자의 대답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과연 우리 정치인인들 중 공자가 지적한 다섯 부류의 사람에서 벗어날 수

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국안민(富國安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도 정치

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사건건 반대하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소정묘 같은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형국이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인접국인 중 · 일의 무력팽창과 북한의 핵

위협으로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미래가 불투명한 불안한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안보

와 민생에 필요한 산적한 법안처리는 팽개치고 국가적인 대참사인 세월호 사건마저

지겹도록 선거와 정쟁에 이용하는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한국정치

의 현주소다.

  공자가 "소인배들이 당파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염려스럽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리라. 공자가 강도나 도적에게 보다 온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

은 범부의 잘못은 제한적이며 개전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감옥에 간 일이 있는 사람에게 딸을 주며 "비록 법망에 걸린 일이 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 신랑감으로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다한다. 

  '순자(筍子) 유좌편(宥坐篇) 제28'에 나오는 위와 같은 공자의 이야기는 오늘날 젊은

이들로 하여금 소정묘 같은 사람의 가면을 꿰뚫어보고 이들의 파당놀이가 얼마나 위험

한 짓인지 알아보도록 하기위해 가르침을 베푼 것이다. 무더운 계절에 더위를 식혀주

는 소낙비와 같은 밝고 시원스런 소식들이 톱뉴스로 쏟아졌으면 한다.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4.7.16)/청강 허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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