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닮긴 삶(15) - 안수정등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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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15)
<岸樹井藤>
어떤 사람이 광야를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나운 코끼리 한 마리가 쫒아
온다. 정신없이 도망을 치다보니 언덕 아래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우
물 밑으로 등나무넝쿨이 늘어져 있었다. 넝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간 그는 ‘아 이제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채 내쉬기도 전에 밑을 보니 무서운 세 마리의 독룡이 입을 벌리
고 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혓바닥을 날
름거리며 자신을 노리고 있다. 밖에는 코끼리가 지키고 있으니 나갈 수도 없고 오직 나
무넝쿨만 움켜쥐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타나서
나무넝쿨을 갉아대기 시작한다. 이제 죽는구나 싶은 절대 절명 위기의 순간에 어디선가
달콤한 향내가 나는 액체 한 방울이 얼굴로 떨어진다. 혀로 핥아 보니 꿀물이었다. 나무
위에 지어놓은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허기와 갈증에 지친
그는 달콤한 꿀맛에 취해 방금까지 두려웠던 상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떨어지는 꿀물
을 받아먹으려고 온 정신을 집중한다.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는 이 설화는『불설비유경(佛說譬踰經)』에 나오는 인생에
대한 비유이다. 광야를 가는 사람은 우리들 삶의 고독한 모습이고 사나운 코끼리는 언제
라도 부지불식간에 닥칠 수 있는 죽음의 살귀(殺鬼)로 생의 무상함을 뜻한다. 우물은 우
리가 사는 세상이며, 우물 밑바닥은 황천으로 세 마리의 독룡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네 마리의 독사는 우리 몸의 구성요소인 지(地 :살과 뼈)·수(水:침과 혈액)·화
(火:체온)·풍(風:움직이는 기운)의 四大를 말한다. 등나무 넝쿨은 생명줄을 의미하고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의 시간을 말하며 꿀은 오욕락(五欲樂:재물욕,성욕,식욕,수면욕,
명예욕)을 상징한다. 밤낮을 뜻하는 두 마리의 쥐가 하루하루 잠시도 쉬지 않고 생명줄을
갈아먹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욕락의 꿀 한 방울에 목을 매는 현실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의 몸은 뭇 인연(因緣:원인과 조건)의 임시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순간
순간 변화하며, 위태롭고 나약한 인간 존재의 허약함을 우물속의 등나무에 비유한 정등
설화는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의 파사나디왕을 위해 설한 것이라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인 것처럼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고 태어
난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욕락에
탐착하다가 죽음이라는 불청객을 만나면 생의 마침표가 준비되지 않은 채 허둥대다가 슬
픈 삶을 마감한다. 삶은 어떻게 보면 살기위해 사는 것이라기보다 죽기위해 사는 것으로
삶이란 잘 죽기위한 끊임없는 자아완성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결국 잘 산다는 잘 죽기위한 것이고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아온 삶의 결과인 것이다.
꽃은 지기에 아름답고 삶은 사라지기에 값지듯이 유한한 인생에서 살아있는 동안 무상
한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겨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즐기면서 여한이 없는 최선의
삶을 살다가 생명의 불꽃이 다하는 그날, 삶의 찌꺼기들을 완전히 태워버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런 삶을 꿈꾸어 본다.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4.9.24)/청강 허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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