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닮긴 삶(18) - 詩人의 삶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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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18)
[詩人의 삶]
필자가 시인으로 등단한 일은 그리 오래지 않다. 한 5년 쯤 되는지 모르겠다.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나 나의 글을 본 몇몇 문학지로부터 시인으로 등단하라는 권유와 함
께 원고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각종문학지가 난무하는 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친구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자기가 아는 사람가운데 시인이 있
는데 그 사람과 만나 얘기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공무원시절 공무원 동인지에 시인
으로 오래전에 등단하였으나 자기도 새로이 등단하였다고 하면서 내게 원고를 내어
보라고 해서 등단한 것이 모 문학지인 것이다. 등단식이 있는 그날 그의 차에 동승하
여 황금찬 시인을 모시고 시상식 행사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그 날부터 황금찬선생
님과 인연이 된 셈이다. 이후 매년 행사 때마다 황선생님을 모시면서 친밀한 사이가
된 것이다.
내가 황금찬 시인을 언급하는 것은 한국문단의 시인 중 가장 연세가 많은 분(97세)
으로 원로중의 원로이시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을 비롯하여 그분과 같이 활동하던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황선생님께서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단활동
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선생님은 아직도 수십편의 시를 암송하고 계시며 그 분
의 시낭송은 지금도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저리게 하는 감동을 준다. 그렇게 연로한
나이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시인이 계신다는 것은 우리 시인들의 자랑
이며 표상인 것이다. 특히 김소월시인이 러시아 문학협회에서 세계의 3대시인으로
공인받게 된 것은 황금찬선생님의 공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훌륭한 분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인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이다.
시는 맑은 영혼의 울림이자 매개체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맑게 하고 한없는
기쁨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고 메마른 현실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는 언
어의 마술사이다.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십수년전의 일이다. 어쩌다 주변의 권유
로 군에 관한 시를 써서 국방일보에 공모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해 국군의 날을 앞둔
시점에 시를 써서 국방부 정훈부로 보냈더니 국군의 날을 기해 나의 시가 문학박사이
자 문인협회장인 모 인사의 시와 함께 나란히 실린 것이었다. 당시 국방일보로부터 원
고료 대신 국방부장관의 손목시계를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 때 쓴 시제가 '전선에
핀 들꽃'이다. 이후에도 현충일 행사에 즈음하여 또 다른 나의 시가 국방일보에 게재
되기도 하였다.
이 시를 어느 원로시인님이 읽고 감동하였다고 하면서 국방부와 재향군인회 등,
백방으로 나의 거처를 수소문하다가 동사무소와 연락이 닿아 당시 동사무소 직원이
직접 나에게 전화하여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서 전화를 연결해도 좋겠느냐고 하기에
승낙했던 것이다. 그분과 통화하고 따로 날자와 장소를 잡아 만나 보았더니 체격이
크고 외모가 단아한 칠십을 넘긴 노신사 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육군대령
으로 예편한 분으로 육이오 전쟁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초급장교로 참전하신 분으
로서 나의 글을 읽고 옛날 생각이 나서 꼭 한번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편의 시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언젠가는 이 시를 관광버스 안에서 낭독하였더니 마침 그 자리에 있는 분 중
에서 강원도 화천이 고향인 분이 계셨는데 화천에서는 1년에 한번 화천군행사로서
'비목'(한명희작사)의 시 행사가 있는데 군수명의로 초청토록 하겠으니 그 때 나의
시를 낭독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였다.
내가 시인으로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
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쓴 단 몇 줄의 글이 타인의 가슴을 눈물로 적셔준다는
사실이 이외였고 그러한 일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희망을 준다는 것이 내겐 큰
용기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간혹 어떤 분은 내 카페에서 나의 글을 읽고 고맙다는
사례로 그 지역의 특산물을 손수 만들어 소포로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어쩌면 詩
는 그윽한 한 송이의 향기로운 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귀한 詩와 詩人을
흉내 낼 수 있는 내 자신이 가끔은 대견스러울 때가 있기도 했다. 시인은 영원히 詩人
이지 詩家가 될 수 없기에 경제적으로는 늘 가난하면서도 마음만은 청명한 가을밤에
떠있는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여유로운 것이다.
詩人! 그는 영혼의 아름다운 노스탤지어이며 영원한 방랑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詩人의 삶이 좋다. 겉으로 가진 것은 적지만 안으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한없
이 맑고 향기로운 사유의 세계가 나를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 주간한국문학신문 기고 칼럼(2014.12.17)/청강 허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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