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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20)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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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닮긴 삶(20)

 

 

[겨울 소고(小考)]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이다. 이곳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7˚라

한다. 추운 날씨에 바람까지 부니 체감 온도는 더욱 낮을 것 같다. 서남해안과 남

지방에서는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한다. 어느 새 가을을 훌쩍 뛰어넘어 겨울이 와버린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계절도 인생도 이런 것인가 보다. 내 나이를 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월이 지난 것이다. 어느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

았다"는 글귀가 있다더니 정말 우물쭈물거리다가 이만큼 와버린 것이다. 늦게나마

불법(佛法)을 만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지만 지금이 초발심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수행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고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

지만 현재의 나는 오히려 더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쓸데없는 분별심과 번뇌만 더

하는 것 같은 자신이 한심스럽다. 날씨가 춥다고 집에서만 지내기도 뭣해서 도봉산

의 쉼터로 가보았다. 날씨 탓인지 쉼터에는 사람이 없었다. 서산에 점점 가까워지는

오후의 햇살을 바라보다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니 상수리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

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아름답게 보이던 붉고 노란 단풍들이 어느새 땅으

로 떨어져 싯누런 갈색으로 시체마냥 나무 등걸에 쌓여있다. 떨어진 낙엽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라는 자연의 뜻인지도 모른다.

  눈보라가 차갑게 몰아치는 북풍한설로부터 살아나려면 거추장스런 겉치레들은 모

털어내고 빈 가지만이 생존을 지켜준다는 것을 나무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겨울

가고 봄이 오면 가지마다 다시 새싹을 틔우듯이 우리네 인생도 만년에는 모든

과 애착을 덜어내고 새로운 생을 맞이하는 지혜를 자연을 통해 배워야 할 것 같다.

  번뇌는 나태와 계행이 바르지 못함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어리석음은 불나비가 불

을 향해 달려들 듯 잘못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니 계행을 바로 세우고, 마음을 고

요히 한다면 밝은 지혜가 저절로 드러나 번뇌는 쉬어지고 어리석음에서 자유로워

질 것이다.

  우리들 중생은 언제나 새로운 경계에 부딪치면 호기심이 발동하고 마음이 요동치

게 되어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잠재된 업력이 발동하는 대로 움직이기 쉽상이

기에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 까지도 우리들로 하여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고

마지막 유훈으로 그렇게 당부하신 것이리라.

  가을을 떠나보내고 찬바람 부는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서면서 내가 서있는 인생의

시점이 어디쯤이며 내 사유의 깊이가 살아온 세월에 걸 맞는가를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곰곰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200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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