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문학 35호- 신인상 당선시 하심(下心) 외 4편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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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문학 35호- 신인상 당선시 김영만 하심(下心) 외 4편
김영만
하심(下心) 외4편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허공에 한 모양을 나투며
반짝이는 별무리 속
하늘가 언덕마루에 서서
사바를 굽어보니
옛적에 석가는
모든 이가 자성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다시 상을 내어서
너는 중생이요
나는 각자라 뉘 말하리
삼계의 스승자리
일원상 그어놓고
주장자 들고서
인천(人天)의 좌표를
정하지 않는다면
뉘 그 업장을 이고 가리
귀의 법응화신
자성불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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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法界)로 가는 길
대지 위 우뚝 선 자리
무지갯빛 봉우리 되어
억겁의 세월 속
많은 세월을 간직한 채
산 아래 고요함을
듬뿍 담아서 늘 신비함과
아련함을 토해내는 너
비장함을 간직한
장수의 고함
난세의 영웅 되어
세월을 멀리한 채
그대로 산허리
고목에 달린
잎사귀가 반짝임이어도
천하의 운무(雲霧)를 벗 삼아
삼계(三界)를 유희하고자
법(法) 하나 헤아리며
미소를 머금은 채
힘껏 펼쳐보는 너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세계 넘어 둥근 듯 보이는
법신(法身)의 실체
미간 백호 되어
온 법계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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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
사미승의 기지개에
산사의 아침은 눈을 떠
그 손끝 살아있는 불씨의 휘저음은
잿빛 공기를 타고 든다
아침 공기를 가르는 첫 성의
목탁소리는 종소리와 함께
부처의 눈을 밝게 하고
삼계의 분주함이 이어진다
구도의 치열함이 하루의
모습이 되어 버린 두 손 사이에는
삼생의 업장과 발원을 간직한 채
임을 향한다
다리를 틀어 보면
일어나는 번뇌의 삼독이
노승의 자애로운 미소 속에 녹아든다
발길 닿아 머무는 산사이기에
너와 내가 산의 주인이 되어
가질 수 있는 많은 것을
텅텅 털어 공유하면서
서로 향하여 웃음 짓네
흐르는 산줄기마다
붉게 물든 낙엽 밑
땅속 꿈틀거림에도
불성은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주장자 한 뺌 스쳐본다
앉으면 속이요, 서 있으면 승인데
승과 속이 한 몸 되어
지난날의 인연이 머리끝에 닿아도
아침 이슬 되어 하얗게 영롱하네
본래의 나의 모습 찾으러 온 길
번뇌 되어 꿰어진 삼천 주
산사의 암자 산 구름 되어
가까이 가까이 흘러감 속에
수도승의 염불소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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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나한 석불전
생명의 근원 한 줄기 물 흐름 속에서
천삼백 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나투시어
찾는 이 마음 직관하며 화강암 석실에서
23 화신 변화 자제로움으로 앞 서해
해조 물길 따라 본국 천축국 서원으로
지친 길손 숙세의 업장 걷어주시는 나한님들
천진한 미소에 동심으로 돌아가
같은 옛 모습 서로가 그대로이기에
담을 것 없는 마음 한낮 꿈 해거름 속 사라짐을
신통자재로써 미소하며 낙가산자락 머무시네
중생서원 한없는 중생심이기에
뜰 앞 향나무 향하는 마음 일향 피우고
석굴전 참배하는 그림자 부처 마음이기에
둥그런 석실 도량 석불전 23나한님들
참회 발원 마음 따라 중생 마음 내어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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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道伴)의 향기
아지랑이 너울 퍼짐 따라
여울 넘어가는 꽃향기에
꽃내음 속 꽃향기가 되어 보고
점점 시간의 인연이
긴 영겁의 세월 속 만남이기에
눈동자 눈빛 눈맞춤으로
그 빛깔이 되어 보고
장대한 아침
개벽의 여명 따라
서로 축복하는 여정의 몸짓
줄기 잎사귀의 푸르름
아침 이슬이 되어 보고
꽃샘이 되어
청명한 하늘 푸릇함을
동행하는 도반의 마음 따라
영겁토록 푸르름으로
연화장 꽃향기 되어
함께 가는 그 길 따라
법계 가득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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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시 심사평
불성(佛性)을 가득 담은 구도자의 노래
모처럼 불성(佛性)으로 점철된 시 40여 편을 접해 봤다. 제목부터가 불교 내음을 듬뿍 담고 있는 시편들에다 찬불가로 작곡하여 세상에 내보내도 손색없는 가사체(4·4조) 시편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현대시가 지향하는 서정적 노래라는 것이 단순히 율조에 근거한 시적 지향점이 아님을 상기하여 가사체 시편들은 일단 심사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국불교문학』 편집진과 함께 숙의하여 김영만 시인의 작품 중에서 〈하심(下心)〉〈법계로 가는 길〉〈산사〉〈보문사 나한 석불전〉〈도반(道伴)의 향기〉 등 5편을 당선작으로 선(選)하였다. 김영만 시인은 신분부터가 불교에 매우 깊이 관여하고 있는 법사로서 불교포교에 그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임하는 시인이다. 절제된 언어 추구라는 시창작 본연의 의미보다는 생경한 불교용어를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 우선 관심을 촉발한다고 하겠는데, 〈하심〉 후반부에서 “삼계의 스승자리/ 일원상 그어놓고/ 주장자 들고서// 인천(人天)의 좌표를/ 정하지 않는다면/ 뉘 그 업장을 이고 가”겠는가를 물으며 오늘의 불교 현실에서 자신의 입장과 함께 스스로 성찰한 삶의 지향점을 어떻게 추구해 나갈 것인가를 그 나름대로의 각오를 담아 결연하게 내보이고 있다.
어쩌면 시대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통찰하며 종교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감내하는 겸허함이 묻어난다고나 할까. 이와 함께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세계 넘어 둥근 듯 보이는/ 법신(法身)의 실체”를 간구한 〈법계로 가는 길〉이나, “아침 공기를 가르는 첫 성의/ 목탁소리는 종소리와 함께/ 부처의 눈을 밝게 하고/ 삼계의 분주함이 이어진다”고 묘사한 〈산사〉, “참회 발원 마음 따라 중생 마음 내어”본다고 그린 〈보문사 나한 석불전〉, “청명한 하늘 푸릇함을/ 동행하는 도반의 마음 따라/ 영겁토록 푸르름으로/ 연화장 꽃향기 되”자고 읊은 〈도반의 향기〉 등도 김영만 시인의 법계 시심을 그대로 표출한 수작임을 밝혀둔다.
시란 무엇인가. 이 커다란 질문에 ‘시는 잘 다듬어진 리드미컬한 언어의 노래’라 이르고 싶다. 그리고 시는 개성적으로 부각된 정서적 상념을 시인 스스로 어떻게 서정적으로 빼어나게 이미지화 시키느냐는 것이 시작법상 중요한 관건인데, 에즈라 파운드의 명언처럼 ‘가능한한 최대한의 의미가 담긴 언어’를 적극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현대시라는 것을 떠올리며 불교경전 모두가 시적 언어를 유발하는 거대한 시밭임을 상기하면서 이 거대한 시밭을 평생 누비며 삶 자체를 깊이 사유해 온 김영만 시인이야말로 비록 등단은 늦었지만 천생 시인으로 대성할 것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홍윤기·조병무·선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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