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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8대성지 순례기(3-4일차)

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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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순례 3일차]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에서 버스 타기란 마치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리 쏠리고 저리 밀리며 며칠을 달려도 산이라고는 그림자도 볼 수 없고 끝없이 펼쳐진 평원은 그 끝을 분간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없는 것을 하나 더 들라면 차가 달리는 동안 휴식을 취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생리적인 현상은 여자들은 빈 집이나 나무 뒤로 남자들은 도로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삐쭉삐쭉하며 주위를 살피던 일행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인처럼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다.

아무튼 덜컹거리며 아그라를 출발한 버스는 4시간 30분을 달려서 상카시아 스투파에 도착했다. 부처님이 자신을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리천에서 설법을 하시고 내려오신 곳에 세워진 탑이다.

부처님이라고 어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을까. 또한 죽음으로 인해 볼 수 없었던 아들이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세상에서 듣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단어 엄마’. 우리는 그 곳에서 지월스님의 선창으로 하늘을 향해 어머니를 세 번 부르고는 모두들 눈물을 글썽였다. 돌아서 합장하는 지월스님의 가사가 바람에 가늘게 흔들린다.

떠나는 버스 속에서 현지인들은 이 곳을 에어포트(Airport)라고 한다는 마니쉬의 말을 들으면서 부처님이 혹시 UFO같은 비행기를 타고 내려오신 것을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부처님께서는 삼도보계(三道寶階)를 통해 하강하시는데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 의하면 삼도보계탑은 좌측은 금으로 되어있고 우측은 은으로 되어있으며 가운데는 페리리(칠보유리)로 되어있다. 부처님은 중앙계단으로 내려오시고 범천은 좌측계단으로 제석천은 우측계단으로 부처님의 뒤를 따라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니 후세인들이 삼보도계를 거대한 비행기 트랩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가지고 간 쌀로 전속 요리사들이 만든 한국식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다음 목적지인 러크나우로 향한다. 러크나우까지는 장장 6시간이 걸린다는 마니쉬의 말에도 이제는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 일행을 보면서 부처님의 숨결을 느끼기 위한 일념으로 길을 나선 타고난 순례자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도순례 4일차]

러크나우에서 5시 기상하여 코살라국의 수도인 슈라바스티(사위성) 천불화현탑까지 5시간 만에 도착했다. 부처님 당시 코살라국은 자이나교와 같은 이교도들의 텃세가 심해 제자들의 간청에 따라 이교도들이 모인 망고 동산에서 제자들이 건네준 망고를 드시고 그 씨를 땅에 심었더니 순식간에 자라 망고가 주렁주렁 열리고 그 망고가 천 분의 부처님 모습으로 변하는 신통력을 보였다. 천불화현의 기적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을 때 부처님은 어머니를 위한 설법을 하시기 위해 홀연히 도리천으로 승천을 하신 곳이라고 전해진다.

사라진 부처님을 그리워하던 파사닉왕과 우전왕은 병이 들었고 부처님을 뵙지 못하면 결국 죽고 말 것이란 말을 들은 신하들이 나라 안의 뛰어난 조각가들에게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게 하는데 파사닉왕은 자마금으로 우전왕은 전단향으로 역사상 최초의 불상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월스님의 지도로 잠시 동안 명상에 들어 부처님을 생각한다. 무심한 세월과 무관심 속에 소와 염소가 풀을 뜯는 동산으로 변해있는 승천탑을 보면서 먹먹한 가슴으로 수닷타 장자의 집으로 향한다.

급고독장자로 불리는 수닷타는 처남에게서 거룩한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밤길을 걸어 사타바나 숲으로 갔다. 새벽녘에 도착한 수닷타는 숲속을 거니는 부처님을 만나 발에 예경하고 넘치는 환희심으로 부처님이시여 어젯밤에는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대답한 말씀이 경전에는 이렇게 전한다. “탐냄을 떠나, 맑은 마음에 때가 없어, 깨달음에 든 자는 어디에 있건 편안히 잔다. 모든 집착을 끊고 번뇌를 조복했기에 마음은 정적에 들어 조용하고 또 편안히 잠을 자느니라.”

수닷타 장자의 집터 옆에는 앙굴리말라의 집터가 있다. 마치 선한 자와 악한 자를 함께 보여주기 위한 가르침의 한 방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앙굴리말라는 사위성에 있는 바라문 마니발타라의 제자로 본래 이름은 아힘사(不害)이다. 자기의 탈선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옷을 찟고 거짓을 말하는 아내의 말을 믿은 스승은 제자를 파멸시키기 위해 너의 학문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비밀의 술법뿐이다. 그것은 백사람을 죽여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수행이 완성될 것이다.” 고뇌하던 아힘사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믿음으로 칼을 받아들고 거리로 나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었다. 마침내 99명을 죽이고 소문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마저 죽이려할 때 부처님께서 나타나셨다. 순간 어머니를 젖혀두고 부처님을 치려하였으나 몸이 오그라들어 꼼짝할 수 없게 된 앙굴리말라가 소리쳤다. “거기 섰거라.” 부처님은 발길을 멈추지 않은 채 말씀하셨다. “나는 언제나 서 있노라. 그러나 그대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도다.” 앙굴리말라는 순간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는 서있고 저 비구는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거꾸로 말을 하는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내 마음은 남을 해칠 생각, 미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움직임이 없노라. 그런데 네 마음은 남을 죽이려는 생각, 뺏으려는 생각으로 언제나 뛰고 있다. 나는 멈추어 있으니 이제 네가 멈출 차례이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아라한과를 얻었지만 그가 죽인 사람들의 가족들에 의해 돌팔매와 몽둥이로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된다.

오늘 순례길은 강행군이다. 부처님께서 45년의 설법기간 중 가장 긴 시간인 24우안거를 지내신 기원정사에 들어섰다. 코살라국 파사익왕의 태자인 기타와 급고독장자라 불린 수닷타가 부처님을 위해 보시한 사원이기에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해 기수급고독원이라하고 줄여서 기원정사라 불리는 곳이다. 아직도 부처님의 숨결이 남아있는 듯 정사의 공기는 청량감으로 가득하다. 성지에서는 호흡을 크게 하라는 지월스님 말씀에 따라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성스러운 기운을 느껴본다.

기도할 적당한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부처님의 거실로 사용되었던 간다쿠티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눈에 익은 스님을 발견하고 기억장치를 가동했다. 오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곳 인도에서 설마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선입견 때문에 판단의 시간도 길어지는 것 같다. 드디어 눈앞의 이미지가 저장되어있는 이미지 중에서 동일한 것을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대뇌로 전달되었다.

김해 사띠 아라마에 주석하고 계신 붓따빨라스님이시다. 마인드케어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2년 넘게 특강을 들었건만 자꾸만 기계가 노후되어가는지 영 시원찮다. 아무튼 반가움에 지월스님과 한달음에 달려가 인사를 드리자 스님께서도 두 손을 잡아주시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지월스님을 인례로 한 시간 가까이 정성을 다해 예불을 올렸는데, 예불이 끝나기를 일부러 기다리신 붓따빨라 스님께서 순례단을 위해 감로법문을 내려주시는 바람에 모두가 환희심으로 연신 절을 올렸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관계로 아난존자의 보리수 아래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기원정사 천축선원에 들러 주지이신 대인 동심스님을 친견하고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단 포교분야 전문위원 혜안 강신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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