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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출처 - 조선시대의 왕비의 하루일과

서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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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왕비는 공식적으로 할 일이 있었습니다.
 
1)왕비는 공식적으로 내명부의 으뜸이었습니다.
 
내명부란 궁중에 있는 모든 여인들, 왕의 후궁이나 그곳에 속한 궁녀들을 말합니다.
후궁들도 빈, 소용, 숙의, 숙용, 등 직위가 있었고,
그들을 총괄하는 책임과 권한이 왕비에게 있었습니다.
 
내명부에 속한 후궁과 궁녀들이 수백 명이니,
그들의 통솔하고 기강을 바로 하는 것도 큰 일이었을 것입니다.
 
 
2)아침이면 웃어른께 문안드리고, 후궁들에게 문안을 받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수명이 길었습니다.
대개 왕의 어머니인 대비가 생존해 있었고,
심지어 왕의 할머니인 왕대비와 증조할머니인 대왕대비까지 있던 경우도 있었지요.
이 분들께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반대로 후궁들에게는 문안 인사를 받아야겠지요.
 
궁중의 법도는 지엄하였으므로
문안인사를 하거나 받는 것도 예법이 있었지요.
인사를 하거나 받기 위해 복장을 갖추고,
인사를 할 때도 이런 저런 덕담이나 훈계의 말을 해야 했을 테니
족히  1 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3. 왕자들의 육아와 교육
 
 왕비 자신이 친히 생산한 자녀는 물론, 후궁들의 자녀까지도
실질적인 훈육 책임자는 왕비였습니다.
자녀들에게 조석으로 문안 인사를 받고,
그들의 건강이나  학문 성취 정도까지 점검을 해야 했지요.
 
그 자녀들이 성장했을 때, 
혼례까지도 챙겨야 했을 테고요.
 
 
4. 왕비로서 덕을 갖추기 위한 공부
 
왕이 왕도를 닦기 위하여 신하들과 함께 경연에 참석하고 공부를 한 것처럼
왕비 역시 왕비로서 또는 부녀자의 덕을  갖추기 위한 독서와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인수대비 같은 경우는 부녀자가 닦아야 할 길을 담은 책을 편찬하기도 했지요. 
 
 
5. 왕의 배우자로서 내조
 
왕비는 사적으로는 왕의 배우자였습니다.
아내로서 왕의 건강과 안녕 역시 챙겨야 했겠지요.
때로는 왕과 국가를 위하여 부처님께 기도도 해야 했을 테고요.
 
조선 시대에는 공식적으로는 숭유억불책을 썼지만,
왕실의 여인들 사이에서는 불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왕비도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고요.
 
중종의 왕비였던 문정왕후 같은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영향을 행사하여 불교 보호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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