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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 금강산서 쫓겨나던 날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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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든 北군인들 몰려와 "소지품만 갖고 나가라"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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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8.24 03:01

금강산서 쫓겨나던 날
금강산 체류국민 전원 철수 - "재산 파손하면 엄중 처벌" 北 골프장·발전기까지 접수
시설·장비·비품 약탈 우려… 두고온 지프·승합차 수십대, 곧장 군사용으로 쓸 수도

"남측 인원들은 오전 9시 사무실로 전원 집결하시오."

북한 금강산 국제관광특구지도국 관계자가 지난 22일 오전 8시쯤 금강산지구 내 온정각에 있는 현대아산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오전 9시 현대아산과 에머슨퍼시픽 등 협력사 직원 14명이 모이자 김광윤 특구지도국 부장 등 북측 관계자들이 사무실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김 부장은 종이를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시각부터 남측 시설을 봉쇄하고 출입을 차단한다. 72시간 내에 나가라. 물자와 재산 반출은 금지한다. 소지품만 갖고 나가라. 재산을 파손하는 불순한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한다…."

김 부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동안 금강산지구 내 남측 부동산과 시설에 소총을 든 인민군 초병이 하나둘 배치됐다. 북한 군인들은 에머슨퍼시픽이 관리해온 골프장과 현대아산이 전력 공급을 위해 고성항에 마련해둔 발전기도 '접수'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한 군인들이 시설물 통제에 들어간 것을 보고 철수 통보를 실감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 인원들은 사무실 안에 사실상 갇혀있다시피 하다 "숙소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고서야 고성항에 있는 직원 숙소로 돌아갔다.

23일 오전 짐을 싸서 나오는 우리 인원과 북측 특구지도국 관계자들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 북측 관계자는 "곧 보게 될 건데 짐을 이렇게 많이 싸 가지고 나가느냐"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한 현대아산 직원은 "금강산에 정이 들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의 요구로 금강산지구에서 철수한 우리 국민 14명과 재중(在中) 동포 2명이 23일 강원도 고성군의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아산 이형균 금강산사업소 총소장(부장)이 이끄는 우리 쪽 인원 14명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했다. 이 부장은 "하루빨리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 금강산을 떠난 우리 직원들이 다시 모여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를 쏴 죽인 북한 군인들이 이번엔 우리 시설들을 점령군처럼 접수했다"며 "북한은 지금 군홧발로 짓밟은 우리 재산을 들고 외국과 관광 사업을 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금강산지구 내 우리 시설, 장비, 비품들을 약탈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강산에 남아있는 우리 쪽 자산은 현대아산 소유의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 한국관광공사의 온천장과 문화회관, 에머슨퍼시픽의 골프장과 스파리조트, 일연인베스트먼트의 금강산패밀리비치호텔과 고성항 횟집 등이 있다.

대북 소식통은 "호텔 객실마다 TV, 침대, 전구, 비누는 물론 발전기에 쓸 기름 등 북한이 탐낼 물건은 차고 넘친다"며 "현대아산이 두고온 지프와 승합차 수십대는 곧장 군사용으로 쓸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작년 11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금강산에 가보니 북한군이 현대 자동차 갤로퍼, 레토나 등을 군용으로 이용하고 있더라"며 "알고 보니 햇볕 정책이 시행될 때 현대를 통해 북한에 넘어간 물자들"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우리 물자와 장비를 무단 전용(轉用)한 사례가 있다. 정부 관계자는 "2003년 11월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경수로 사업이 중단되면서 함경남도 신포에 중장비와 발전 설비 일부를 두고 왔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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