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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움출처 - 청봉스님 카페에 있는글입니다

서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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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스님의 장군죽비에 올려있는 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분을 크게 믿지 않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분의 말씀에는 단 한분도 반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분을 안 믿을 수가 없게 되는군요.....

 

불교카페에 보면 한분도 빠짐없이 전부 견성했다고 하시던데...

 

참으로 견성하셨다면 이 글에 한마디 답평을 해주소서

 

만일 법리에 맞아 납득하게 되오면 평생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일생을 시봉하겠읍니다......청봉카페에 속한 분의 평은 사양합니다.()()()

 

 

 

 

1. 德山托鉢(바리때를 들고)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잡고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였다.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런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 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도리를 알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三頭六臂이니 어떠한가?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뚫고

눈부신 해는 수미산을 도는도다.

여기에서 頂門의 정안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일을 마쳤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全機大用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두 번째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위에 뿌리리라.


예부터 조사 가운데 영웅은 臨濟스님과 德山스님이라고 모두 말하니,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은 천고에 큰 안목이라 이는 총림의 정론이다.

그중 덕산스님 밑에서 두 사람의 큰 제자가 나왔으니 岩頭스님과 雪峰스님이다.

덕산스님이 어느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에 이르렀다.

공양주이던 설봉스님이 이것을 보고,

“이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로 가는가?”하니,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方丈으로 돌아갔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전하니 암두스님이,

“보잘것없는 덕산이 末後句를 모르는구나.” 했다.

덕산스님이 그 말을 듣고 암두스님을 불러 말하되,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하니, 암두스님이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과 달랐다.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이후로는 천하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 년뿐이로다.”했는데,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가셨다.

이것이 종문의 높고 깊은 법문인 德山托鉢話이다. 이 공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덕산대조사가 어째서 설봉스님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는가,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가, 아니면 또다른 뜻이 있었을까?

장군죽비: 천재도 건망증이 있을때가 있는법이니라.

 

둘째는 덕산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는가, 말후구도 모르고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장군죽비: 한때 졸음이 귀를 멀게 했느니라.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장군죽비: 귀가 있으면 알아들을 말이노라

 

넷째는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受記를 받았을까?

그러면 암두스님이 덕산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

장군죽비: 잃은것을 되 찾아 주었노라.

 

이 공안은 鸚毒이나 砒霜과 같아서 이렇거나 저렇거나 상신실명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조사의 뜻을 묻어버리지 말라.

思量分別인 有心경계는 고사하고 허통공적한 無心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은 절대로 모르는 것이요,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부수어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옛사람의 立脚處를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이 공안을 바로 알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 공안을 일시에 다 알게 된다.

그래서 出格大丈夫가 되어 금강보검을 높이 들고 천하를 횡행하여 죽고 살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것이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닌가?


虛堂선사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바리때를 들고 방장으로 돌아간 뜻이 무엇입니까??”

“귀하게 사서 천하게 파느니라(貴買賤賣).”

장군죽비: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때가 있다 하더구나

 

“말후구도 모른다 함은 또 무슨 뜻입니까?”

“시끄러운 시장에서 조용한 망치를 치느니라.”

장군죽비: 귀병이 생길때는 말소리를 바로 듣지 못하느니라.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귀신은 방아를 찧고 부처는 담장을 뛰어넘느니라.”

장군죽비: 더운 탕국을 먹어보고 "아~시원하다"한 뜻을 일러 줬노라.

 

“그 다음날 전과 다르고 또한 말후구를 알아 기쁘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칼에 맞은 흉터는 없애기 쉬우나 惡談은 없애기 어렵느니라.”

장군죽비: 과하고 과한 사족이로다.

 

道林선사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머리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간 뜻이 무엇입니까?”

“빠른 번개에 불이 번쩍거리느니라.”

장군죽비: 시끄러운 잡음으로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니라.

 

“말후구도 모른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서로 따라오느니라.”

장군죽비: 말끝을 잘 살폈어야 하니라.

 

“어떤 것이 암두의 은밀히 말한 곳입니까?”

“만 년 묵은 소나무가 祝融峯에 서 있느니라.”

장군죽비: 매를 맺은후에는 정신이 들게 되니라.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갔으니 참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까?”

“옴 마니 다니 훔 바타로다.”

장군죽비: 깊고 얕은 것은 범부의 가림이니라.

 

(師云)이 두 분 큰스님의 문답이 탁발화의 골수를 관철하였으니 실로 고금에 듣기 어려운 바라,

모름지기 간절히 참구하고 참구하여야 한다.


또 설봉스님이 암자에 살 때에 두 중이 와서 인사하니 설봉스님이 문을 밀고 나오면서,

“이것이 무엇인가?”하니, 그 중들도

“이것이 무엇인가?”하므로, 설봉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

그 중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전하니 암두스님이,

“슬프다, 내가 당초에 설봉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지 않았음을 후회하나니,

만약 그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었던들 천하사람들이 설봉을 어떻게 하지 못하였으리라.”하였다.

그 중이 법문의 뜻을 묻자, 암두스님이 말하였다.

“설봉이 비록 나와 한 가지에서 나기는 했으나 나와 한 가지에서 죽지는 않으니,

말후구를 알고 싶다면 다만 이것이다.”

(師云)이 법문도 또한 덕산탁발화와 그 맥이 서로 통하는 것이니,

조상이 영험치 못하니 앙화가 그 자손에게 미친다.

장군죽비: 법문을 한다는 것은 깨친바를 일러 법을 깨쳐 들게 하는 것이거늘

누군가가 제소견으로 설봉을 폄하한 꼴이나 실은 설봉은 무관하니라.

또 덕산탁발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하지 못하리니

만일 설봉이 아니였더면 그르칠뻔 하였다 하리다.

 

뒤에 雲門스님의 직계손자인 雪竇선사가 頌하였다.

말후구를 그대 위해 설하노니 밝음과 어둠이 서로 함께 비치는 때라

한 가지에서 남은 서로 다 알고 한 가지에서 죽지 않음은 모든 것 떨어졌도다.

모두 떨어졌음이여, 석가와 달마도 모름지기 잘 살펴야 하리라.

남북동서 두루 다녀와서 깊은 밤 일천 바위에 쌓인 눈을 함께 보노라.

장군죽비: 자손을 잘 두면 가운이 번창하게 되는 것이로다.

 

대중들이여, 이들 공안을 총림에서 흔히들 논란하지마는 산승의 見處로 점검해 보니,

덕산 三父子가 말후구를 꿈에도 몰랐고 설두의 蛇足은 지옥에 떨어지기 화살과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말후구인가?

한참 묵묵한 후 말씀하였다.

물소가 달을 구경하니 문채가 뿔에서 나고

코끼리가 뇌성에 놀라니 꽃이 이빨 사이에 들어간다.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치고 내려오시다.

장군죽비: 원숭이도 흉내는 낼 줄 아나 흉내는 흉내일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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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같네.. 두분의 당시 상황에 교감이 이루어진 내용을 오늘날변한 여건속에서 억지로 알음알이로 꿰맞추려니 뜻만 왜곡될 뿐이로다. 
지우 이런 것 즐기면 희론에 빠지기 쉽상.. 남의 소싸움 구경 그만하고 자기 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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