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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산(碧山 )대종사의 행화(行化)- 1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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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련당法蓮堂은 30세 미만에 6ㆍ25 당시當時 입적入寂하고 법능은 홀로 절세고수絶世孤修에 우거수도寓居修道요. 청화선사淸華禪師는 전남全南 태안사泰安寺 조실祖室로 주석住錫하고 있으며 보하寶河 지죽화상知竹和尙은 백양사白羊寺 춘추다례春秋茶禮에 벽산한인碧山閒人 시봉侍奉이라 기타 대중大衆은 행방부지行方不知하니…


본문本文은 벽산한인碧山閒人 약기시말略記始末로 을해乙亥(1995년) 만춘일晩春日에 벽산문하碧山門下에서 제자弟子 법능法能이 찬한다.

* 금타金陀 대화상大和尙의 오도송悟道頌

하단릉첨시진실
荷團稜尖是眞實

풍취우타비환경
風吹雨打非幻境
서접비처생연화
絮蝶飛處生蓮花

추단경면방금광
錐端鏡面放金光

연잎 둥글고 뾰족한 모서리가 바로 진실이며
바람 불고 비가 뿌리는 일이 허망한 경계 아니로다
버들 꽃 날리는 곳에 연꽃이 피고
송곳 끝과 거울 바닥에서 금빛이 빛나도다.

1937년11월17일(39세시)
청화淸華스님의
원통圓通불법佛法의 요체要諦에서

금타金陀 스님의 행화行化는?

그 다음에는 금타 화상의 행적이라던가, 공부 경계라던가, 또는 열반상이나 그런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도 금타 스님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대략 말씀드리면 스님께서는 20세 이전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송만암宋曼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습니다. 송만암 스님은 종정을 지내셨고 또 불교전문학교 교장도 지내신 분입니다. 그래서 근래에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 스님의 사형師兄이 됩니다. 출가한 뒤 강원講院도 졸업하고 그 당시의 불교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26세경 과학이나 수학 등 신학문新學問을 공부하여 현대사회를 제도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잠시 동안 환속하였다고 합니다. 30세 때 재입산하여 50세에 입적入寂하였습니다. 39세에 내장사 벽련암碧蓮庵에서 깨달음을 얻고 읊은 오도송悟道頌도 남아 있습니다.
그뒤 내장사 벽련암에서 백양사 운문암雲門庵으로 옳겼는데 금타 스님은 개성個性도 출중한 분이고 소신所信이 확실한 분이기 때문에 은사 송만암 스님과는 법에 대한 견해 차이로 약간 불편한 관계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운문암 생활은 순수하게 참선參禪을 위주하여 일체 불공도 사절하고 식생활은 아침 죽 공양, 점심 때 공양하고 철저한 오후불식午後不食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체 경비는 대중 전원 탁발托鉢로 충당하였습니다.
금타 스님의 열반涅槃은 대중들이 탁발 나간 부재중不在中에 시봉 몇 사람만 남아있을 때 열반에 들게 되었습니다. 금타 스님 사리舍利에 관해서는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물 항아리를 묻고 장치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만한 계제가 되지 못하여 유감스럽게도 사리는 수습하지 못하였으며, 백양사 큰절 스님들 말로 화장터에서 사흘 동안이나 베폭 너비의 서기瑞氣가 하늘로 뻗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금타 스님께서 부처님 정법正法을 여법如法하게 수행修行하고 여실如實하게 증득證得하여 부처님 법의 정수를 시기상응時機相應하게 기록으로 정리하였다는 사실에 우리 후학들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타 스님의 유저遺著인 금강심론(金剛心論:스님의 유고를 모아 편집함)에는 근본불교의 핵심으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에 필수적인 근본선정根本禪定인 구차제정九次第定의 역설과 각 경론經論의 모든 수행법과 수행의 위차位次를 종합 회통會通하여 해탈16지解脫十六地로서 수행차서修行次序를 정립하였으며 동서東西 문자를 종합하여 자행화타自行化他에 요긴한 조도助道가 되는 관음문자觀音文字를 창제하였고 그리고 현대의 역사적 위기인 유물풍조와 기술 만능시대에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유심적唯心的 불교 우주관의 확립 등의 독창적인 희유한 교설들은 비단 우리 후학들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도법문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인류사회의 지도 원리로서 찬연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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