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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이병철 삼성그룹회장은..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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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삼성전자 40년


 

 1968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전자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 전자업계는 모두 그를 외면했다. 이 회장은 간신히 산요로부터 기술 이전과 합작을 약속받고 산요의 40만평 전자단지를 꼼꼼히 둘러봤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부지 확보에 나섰다. "무조건 40만평 이상 부지를 찾아라. 산요보다 한 평이라도 더 커야 한다." 기술을 빌려와 회사를 세우는 형편이지만 언젠가 일본을 뛰어넘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전국을 물색한 끝에 그해 10월 울주군 가천에 75만평, 경기 수원에 45만평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자본금 3억3000만원, 직원 36명으로 삼성전자공업이 문을 열었다. TV 세트를 만드는 삼성산요전기, 브라운관을 만드는 삼성NEC도 세워졌다. 정부는 삼성전자 설립을 극구 반대했다. 이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설득했지만 기존 업계 존립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전량 수출을 조건으로 겨우 허가를 받았다.

▶흑백·컬러 TV를 생산해 수출 기업으로 걸음마를 할 즈음 삼성은 또 한 번 모험에 나섰다. 1977년 이건희 부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했다. 그룹 내에서조차 "자본도 기술도 시장도 없어 절대 안 된다"는 '3불가론'이 쏟아졌지만 아버지를 설득해 밀어붙였다. 19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에서 본격적인 반도체사업 투자 계획을 밝힌 삼성은 10년도 채 안 돼 92년 일본 업계를 제치고 D램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가 하나가 된 건 1988년이다. 그 합병일인 11월 1일이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이 됐다. 내일은 그 40돌이다.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삼성전자 매출은 350배, 직원은 4160배 15만명으로 늘었다. 세계시장 1등 품목 12개에 브랜드 가치는 21조원에 이른다. 어제 나온 3분기 실적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올해 매출 130조원에 영업이익은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성공엔 온갖 반대에도 D램시장에 과감히 투자한 이병철 회장의 사업 안목,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질(質)경영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애니콜' 휴대폰 출시에서 보르도 LCD TV 탄생까지 인재들이 하나가 돼 쉴 새 없이 이어달리기 해온 기술·품질 혁명의 합작품이 오늘의 삼성전자다. 1등 기업은 지키기가 더 힘들다. 삼성전자 앞엔 또 다른 격동의 40년이 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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